“조회 시간에 정상회담에 대해 물어보니, 아이들은 북한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없었다”(B중 P교사·57).

“회담 이후 곧 통일이 되는 것으로 아는 아이들이 꽤 있었다”(Y초등교 L교사·43).

대북(대북) 교육은 하루 만에 50년을 훌쩍 뛰어넘는 대 변화를 보였다. 김대중 대통령 방북 이틀째인 14일 교사들과 학생들은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평양의 모습에 대해 자유롭게 얘기하면서도 뭔가 어리둥절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북한의 수도가 평양인지 어제 처음 알았다”고 할 정도로 북한에 대해 무관심했던 학생들은 “TV에서 본 김 위원장이 이전보다 괜찮게 느껴졌다”고 거침없이 말했다.

홍연희(15·중3)양은 “김대중 대통령하고 악수하는 걸 보니 김 위원장이 통일에 협력할 것 같았다”고 했다.

그러나 최정모(15·중3)군은 “며칠 전에 학교에서 ‘안보 글짓기’를 하면서 북한에 대해서 나쁜 얘기를 많이 했지만, 어제 TV에서는 북한에 대해서 좋은 얘기만 나왔다”며 “뭔가 바뀐 것 같은데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대균(12·초등 6)군은 “북한 지도자들은 자기 국민을 못살게 하는 나쁜 사람들이라고 배웠다”며 “나쁜 사람들하고 우리 대통령이 만나서 좀 이상하다”고 말했다.

나이든 교사들은 급격한 변화에 난감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E초등학교 김모(60) 교사는 “아이들이 북한에 대해 환상을 가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 초등학교 교감(55)은 “북한이 순식간에 태도를 바꾸는 것을 수도 없이 봤는데, 만약 정상회담은 좋은 것이라고 했다가 서해교전과 비슷한 사태가 나면 그 다음에는 뭐라고 해야 할까 하는 노파심이 앞선다”고 했다.

C고 한모(59·교련담당) 교사는 “반공 글짓기, 웅변대회 준비로 바쁘던 예전의 6월과는 너무 차이가 나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젊은 교사들은 적당한 교재가 없다고 지적했다. 모 중학교 도덕담당 박모(35) 교사는 “‘한반도 전체에 북한식 사회주의 체계를 세우는 것이 북한의 통일정책’이라고 서술된 교과서 내용을 설명하려니 말문이 막혀버렸다”고 말했다.

/정성진기자 sjchung@chosun.com

/한재현기자 rookie@chosun.com

/곽주영기자 joykwak@chosun.com

[날 짜]20000615

[제 목]해외언론반응;일 NHK·아사히신문 - “일·북관계에 긍정적 영향”;미 LA타임스 - 미는 대북정책 재검토해야;영 인디펜던트 - 냉전 마지막 커튼이 걷힌다;불 르몽드·르피가로 -두 김씨 선의의 경쟁;중 신민만보 - “혈육은 본래 하나다”;

[본 문] 남북 정상회담 합의문 서명 소식에 대해 일본 언론도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13일 자정쯤 김대중(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합의서에 서명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본 국영 NHK 방송은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자정 뉴스를 연장하며 이 소식을 화면과 함께 전했다.

NHK는 ‘남북 수뇌(수뇌), 합의문서에 서명’이라는 자막과 함게 두 정상이 합의서에 서명하는 장면을 몇차례에 걸쳐 계속해서 10여분간 방송했다. NHK는 평양에서 12시에 생중계 되기로 했던 박준영(박준영) 청와대 대변인의 발표가 다소 늦어졌지만, 정규방송을 재개하지 않고 다른 국내 뉴스를 내보내며 평양 소식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방송은 이어 서울 프레스센터를 위성으로 연결해 5개항의 합의문 내용을 상세히 보도하고, 전문기자와 앵커가 합의 내용을 또다시 20여분간 조목조목 분석하기도 했다.

아사히(조일) 신문도 인터넷을 통해 새벽0시11분에 이 소식을 긴급 보도했다. 신문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남북의 화해와 통일’등의 역사적 합의가 갖추어진 것에 대해 환영하고 있으며, 일·북한 관계 발전에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일본 정부의 반응도 전했다. 신문은 또 합의를 바라보는 한국민들의 분위기와 재일동포들 반응을 전했으며, 각국의 반응도 함께 인터넷 신문에 게재했다.

오락 프로그램 같은 진행으로 시청률이 높은 TV 아사히의 ‘뉴스 스테이션’은 김 대통령이 전날 만찬에서 받은 상차림을 재현하기도 하는 등 이번 회담에 쏠린 일본 국민들의 다양한 관심을 보여줬다.

/동경=권대열기자 dykwon@chosun.com

남북 정상회담은 미국의 대북 정책을 평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미국 내에서 북한은 단지 위험한 골칫거리라는 회의론도 있다. 하지만 북한이 외부 세계에 개방하려는 증거들이 있다.

그동안 북한은 법적으로 외국인 투자가 가능하도록 각종 제도와 헌법을 개정했다. 경제면에선, 남한 기업이 남북 정부의 축복 속에 북한에서의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북한이 변화하려는 이번 기회를 미국은 놓치면 안된다. 북한은 미국과 국제 사회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북한에게 접근해야 하나.

첫째 장기적인 안목을 가져야 한다. 북한은 자신들의 계획대로 한 걸음씩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큰 성과를 성급하게 기다리면 안될 것이다. 둘째, 북한이 태도를 분명히 하지 않을때, 협조를 받을 수 없다는 점도 보여줘야 한다. 셋째, 북한에 부족한 지식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즉, 경제 변화를 거치면서 생기는 불안 요인에 대처할 수 있는 교육을 시켜야 한다.

북한 문제에는 위험 요소가 많기 때문에 신중하게 기다려야 할 것이다. 북한을 있는 그 자체로 이해하려 한다면 북한은 국제사회로 들어올 것이다.

/정리=김봉기기자 knight@chosun.com

냉전의 마지막 커튼이 걷힐 듯하다. 기근과 경제적 붕괴에 직면한 북한은 최근 이탈리아, 호주와 외교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평양 남북정상회담 앞에서는 빛이 바랬다. 이것은 현재 전쟁상태에서 이념적으로 경쟁하는 분단국가, 세계에서 가장 무장된 상태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두 나라 정상의 ‘역사적’ 만남이다.

가난과 퇴보에도 불구하고 ‘불량국가’ 북한은 작년 국민총생산의 6분의 1을 국방비에 투입했다. 중거리탄도 미사일 발사실험에도 성공했다.

남한의 국경선은 3만7000여명 주한미군에 의한 ‘덫줄(Trip-wire)’이다. 한반도는 지난 50년 동안 세계 종말전쟁의 장소로 첫번째 리스트에 있었다. 따라서 남한의 김대중 대통령과 ‘친애하는 지도자’인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이의 대화는 하나의 희망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6·25전쟁으로 인한 180만 이산가족의 상봉과 하늘, 땅, 바다를 통한 남북간 연결을 주문했다. 이에 대해 북한은 아직 ‘노’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남북한 사이에는 ‘통일된 독립 한국’이라는 무지개가 걸려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만남이 정례화되어 긴장을 항구적으로 줄이는 것이다.

남북한의 긴장은 무엇보다도 북한의 책임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번에 국제사회에 호의적 인상을 주었을지 모르나, 강철 같은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 북한은 낙후된 산업과 피폐된 농업을 구원해 줄 친구를 찾고 있다.

그러나 경제개혁이 필연적으로 정치개혁이나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경험을 통해 북한은 클린턴 대통령이 말했듯이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정리=채성진기자 dudmie@chosun.com

프랑스의 일간지 르 몽드는 14일자 국제면에 ‘김씨와 김씨, 같은 역사책에서 뜯은 두 쪽’이란 제목으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대비하는 기사를 실었다.

‘김대중 남한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최고 지도자, 그들은 둘 다 코리언이고, 그들 동포의 3분의 1과 마찬가지로 김씨 성을 가졌다. 하지만, 그 외에 그들이 크게 공유하고 있는 것은 없다. 한쪽은 양복 정장을 했고, 또 한쪽은 평이한 점퍼차림이었다. 그들의 만남은 똑같은 한국 역사책에서 뜯어내 나란히 놓은 두 쪽과 같다. 그 역사책은 이데올로기라는 이름으로 헤어져서 강대국 이익에 봉사한 약소국 국민들의 비극을 들려준다. ’

특히 이 신문은 김정일 위원장의 양면성을 지적했다. ‘흔히들 그가 괴팍하고 충동적이고 권위적이면서도 술과 여자, 영화 그리고 마술을 좋아하는 쾌락주의자라고 한다. 하지만 주민의 3분의 1이 굶주린 빈혈 상태의 국가를 통치하는 그의 정권이 군사적 위협이란 패를 이용해서 강대국들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 방식을 보면, 그의 전술가로서의 재능이 입증된다.

이같은 토대 위에서, 김일성주의의 후계자는 두 한국의 화해의 장인(장인)으로 역사에 자리잡기 위해 공을 들이는, 정치인이자 권력의 지렛대 활용의 달인인 김대중 대통령을 대화 상대자로 맞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르 피가로는 14일자 국제면 1개면 전체를 통해 ‘김씨들 간의 선의의 경쟁’이란 제목으로 남북한 정상의 평양 상봉을 보도했다. 이 신문은 ‘수수께끼 같은 공산주의 북한의 지도자 김정일이 김대중 한국 대통령을 영접하면서 껍질을 깨고 나왔다’고 강조했다.

/파리=박해현기자 hhpark@chosun.com

김대중 한국 대통령이 북한 평양으로 가 정상회담을 하기 전날 저녁, 한국의 진(진)모씨가 인터넷을 통해 김대통령에게 시를 한 편 써보냈다. “혈육은 나누기가 어렵고 본래 한 기운으로 생겨난 것이다. 나무로 치자면 뿌리는 같고 가지가 다른 셈이다. 물 한 잔도 반드시 나눠 마셔야 한다. ” 이 글은 한국의 어느 보통 국민이 조국통일의 기대감을 나타낸 것이며, 전체 한민족 공동의 마음을 표출한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대통령에 취임한 뒤 남북 쌍방이 서로 특사를 파견하고 정상회담을 갖자고 제의했다. 올해 4월 북한은 남한에 남북대화를 위한 접촉을 원한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드디어 6월 13일 김대중 대통령은 38선을 넘어 평양에 도착, 55년 만에 첫 남북정상회담을 실현시켰다. 이것은 민족화해와 조국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것이 한국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염원이며 대세임을 말해주고 있다.

55년간의 분열과 근 반세기에 걸친 냉전을 겪으면서 남북 양측이 갖게 된 의심과 적의가 한 두 번의 회담으로 해소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대화는 대결보다 결국 좋은 것이다. 지속적으로 대화하고 서로의 이해를 심화해간다면 의심과 적의는 점차 사라질 것이다.

/정리=여시동기자 sdyeo@chosun.com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