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오가는데 한달··· "지구 저편에 있는 느낌"
'휴대폰 대화'하는 서울 연인들 보면 눈물이 왈칵..


경희대 교육대학원 석사과정에 있는 베트남인 원수은(여·26·본명 구엔 티 도우 투 은)씨는 최근 한국인들의 ‘이산의 아픔’을 실감하고 있다. 베트남 외교관인 원씨 남편(27)의 근무지가 평양 주재 베트남 대사관이기 때문이다.

작년 7월 하노이에서 결혼식을 올린 이들 부부는 신혼여행이 끝나기 무섭게 남편은 근무지인 평양으로 향했고, 원씨는 서울로 왔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자동차로 3시간 남짓 떨어진 거리이지만 평양에 있는 남편과는 전화 통화조차 불가능하다. 그는 “마치 남편이 지구 저편에 가 있는 듯한 막막한 느낌”이라고 하소연했다.


이들 부부를 맺어준 것은 ‘한국어’였다. 지난 98년 하노이국립대학에서 동북아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던 원씨의 ‘한국어 교사’가 남편이었던 것이다. 남편은 20여년 가까운 북한 근무 경험이 있는 외교관 아버지를 따라 평양의 김일성대학을 졸업한 뒤, 하노이에 있는 대우호텔에 근무하며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곧 사랑에 빠졌지만 함께 있는 시간보다 떨어져 있는 때가 더 많았다. 98년 11월 원씨가 한국 정부 초청으로 서울에 유학오면서 첫 이별이 시작됐고, 이어 베트남 외무고시에 합격한 남편이 99년 3월 첫 근무지인 평양으로 떠난 것이다.

서울과 평양에서 떨어져 살게된 이들 부부의 유일한 연애 수단은 ‘편지’였다고 한다. 편지 교환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남북한 간의 직접 서신 교환이 불가능해 중국과 베트남을 거쳐서 편지를 보내면 답장을 받는 데 보통 한 달 이상이 걸리곤 했다. 하지만 이들은 지난 2년여 동안 거의 매일 편지를 썼다.

원씨는 “길거리에서 젊은 한국 연인들이 휴대전화로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보면 눈물이 나곤 한다”며 “지금 같은 정보화시대에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원씨는 ‘반가운 가족’들과 재회했다. 92년부터 4년간 북한주재 베트남 대사를 지낸 시아버지 동 신 특(58) 대사가 주한 베트남 대사로 서울에 부임한 것이다. 또 남편의 임기가 끝나는 내년 3월에 이뤄질 ‘상봉의 희망’에 부풀어 있다.

원씨는 인터뷰에서 끝내 남편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남편이 혹시 ‘불이익’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 건지…”라며 “이제 한국사람들도 통일을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라고 물었다.
/ 방성훈기자 sungba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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