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외교협의회(CFR)의 로버트 매닝 선임연구원은 워싱턴내에서 손꼽히는 ‘아시아 전문가’ 중의 한사람이다. 언론인 출신답게 비판적인 시각과 풍부한 아이디어들로 인정을 받는 인물인 것이다.

매닝은 최근 수년간 한반도 문제와 관련, 특히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그는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 등장의 원인(원인)이 된, 한반도 전문가 26명이 집단 서명한 ‘클린턴 대통령 앞 공개 서한’ 작성의 주역이다.

당시 서한은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궤도를 일탈하고 있다며, 이를 전면 재검토할 수 있는 고위급 외부인사를 한반도 특사로 지명할 것을 요구했다. 한반도 문제가 미 국익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사안으로 발전한 만큼 미 대통령과 직접 교감할 수 있는 고위급 인사를 한반도 특사로 임명하라는 것이었다.

매닝의 주장이 주목을 받는 까닭은 단순한 비판에 그치지 않고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스코트 스나이더 미 평화연구소(USIP) 연구원은 “그가 제시하는 대안은 정책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풍부한 현실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무시하기 힘들다”고 평한다.

매닝은 또 94년 제네바 미-북 합의가 ‘북한 조기 붕괴론’이라는 잘못된 가설에 바탕을 둔 만큼, 이를 포기하고 북한과의 보다 큰 대형협상(Mega Deal)을 주장했다. 매닝 등 한반도 전문가들의 이같은 요구는 페리 보고서에 상당부분 수용됐다. 매닝은 여전히 클린턴 정부의 대(대) 동북아 정책에 비판적이다. 일관성과, 뚜렷한 전략적 목표가 부재하다는 것이다.

매닝이 단지 ‘비판을 위한 비판’에 머물지 않는 것은, 89년부터 93년 3월까지 윌리엄 클라크 등 한반도 문제를 주관하는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의 정책자문역으로 근무한 경험에서 기인한다는 지적들이다.

한반도 핵문제의 출발을 목격한 것은 물론, 탈냉전 동북아 질서가 형성되는 시기에, 미정부의 실무 관리로 직접 참여했던 것이다.

매닝이 아시아 문제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80년대초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지와 US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지 기자로 아시아 문제를 취재하면서부터라고 한다. 그는 관리로 전직하게 된 까닭을 “기사를 쓰는 일 보다는, 정책을 만드는데 더 관심을 갖게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워싱턴에서는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할 경우, 매닝 연구원이 국무부 정책-기획 분야 등의 주요 책임자로 중용될 것이라는 관측들이 무성하다.

/위싱턴=박두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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