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남북한 최고지도자가 한자리에 앉는다. 2000년 6월 13일 낮이다. 남북 분단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역사는 1970년 3월 19일 동·서독 첫 정상회담을 통일의 초석으로 기록했다. 이제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냉전 지대의 역사를 고쳐쓰려는 시도가 바로 이날 평양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될 것이다.

과연 두 정상은 어떻게 회담을 진행할까. 시나리오는 없다. 특히 김정일 위원장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는 안개 속이다. 여러 관측이 난무할 뿐이다.

13일은 사실상 단독회담이다. 김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극소수의 공식 수행원과 기록요원 등 2~3명씩만 대동하는 형식이 될 것 같다. 두 정상은 ‘뜨거운 포옹’을 통해 첫 대면의 역사성을 상징으로 드러낼 것이다. 그리고 그토록 만나기 어려웠던 분단의 아픔을 표현하면서 인사말을 나눌 것이다.

특히 분단으로 인한 민족의 희생과 손실, 융성의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표현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특유의 빠른 어투로 김 대통령의 평양행에 환영의 뜻을 밝힐 것으로 예상된다.

단독회담인 만큼 곧바로 ‘밀담’에 들어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보다는 김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차례로 기조연설에 해당하는 입장 개진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통일부 당국자들은 말했다. 그동안 단편적으로 공개된 각자의 입장을 최고지도자의 입을 통해 재확인하는 것이다.

김 대통령은 먼저 분단의 고통을 언급한 뒤 정상회담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단독대좌이므로 간단한 메모 정도만 들고 우리의 평화통일 의지를 밝힐 가능성이 높다.

김 대통령은 긴장완화를 위한 남북한의 공동노력, 그 중에서도 1992년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의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할 것이다. 기본합의서가 실천에 옮겨진다면 남북한이 한 민족으로서 공존공영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켜 흡수통일의 우려를 씻지 못하는 김 위원장을 안심시키려 할 것 같다.

김 위원장은 표현은 정중하지만 그동안의 긴장 고조가 남한 내 미군의 주둔, ‘통일애국인사 탄압’ 등에 기인하고 있다는 점을 짚을 것이라고 통일부 당국자는 전망했다. 김 위원장은 남북한 교류와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주한미군 철수 등의 선행조건이 충족돼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할 가능성이 있다.

현안이 워낙 많아 회담 시간은 의외로 길어질 것 같다는 것이 일반적 예상. 보통 1시간30분 정도 걸렸던 그동안의 남북회담보다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는 것. 양측 입장에 대한 절충까지 시도될 경우 더욱 그렇다.

그러나 첫날 회담에서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훨씬 우세하다. 분단의 깊은 골을 확인하고 14일에 이어질 회담의 탐색 성격을 띨 것으로 예상된다.

/최병묵기자 bmcho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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