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규·길수가족구명운동본부 대표·고려대교수

현재 수만명(수십만명)에 달하는 재중탈북자들의 현주소를 미 시사주간지 TIME誌는 다음과 같은 글로 잘 요약하고 있다.

"도망갈 곳도 숨을 곳도 없다."(Nowhere to run, Nowhere to hide. 25/6)

지난 달 30일 입국한 7명의 길수군가족도, 북한을 탈출하여 2년 6개월 동안 중국공안과 북한의 탈북자 체포조를 피해 중국전역을 전전하다 죽음을 각오하고 최후의 수단으로 UNHCR 북경지부에 진입하였던 것이다.(별도자료참조) 그러나 이번의 사태로 최악의 북한인권실태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고조된 것은 다행이지만, 북한의 항의를 받은 중국당국이 재중탈북자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선풍을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은 매우 걱정되는 일이다.

북한은, 그동안 〈유엔인권소위원회〉가 '인권규약이행보고서'와 '주민들의 거주이전의 자유'를 요구하자 1998년에 일방적으로 탈퇴선언을 했으며 또한 인권의 개념이 남한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예를 들면, 어느 국제구호단체의 회원이 북한의 비참한 농어촌 주민들의 생활상을 보고 평양에 돌아와서 당 고위층 책임자에게 "당신들은 주민들을 저렇게 내팽개친채 무엇을 하느냐?"는 항의성 질문에, "그런 사람들은 우리의 혁명과업에 별로 쓸모없는 사람들이다"라는 대답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는 이야기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북한은 형법 47조(공화국 공민이 조국과 인민을 배반하고 다른 나라 또는 적의 편으로 도망치거나 간첩행위를 하거나 적을 도와 주는 것과 같은 조국반역행위를 한 경우에는 7년 이상의 로동교화형에 처한다. 정상이 특히 무거운 경우에는 사형 및 전부의 재산몰수형에 처한다.)에 근거하여 탈북자들을 다루고 있으며, 중국도 1951년과 1967년에 난민지위에 관한 유엔협약과 의정서에 조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탈북자를 인도주의적으로 보지 않고 북한과의 정치적 관계로 대처하고 있다는데 우리의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대외적 여건하에서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난민문제 해결의 차선책은 무엇일까?

장기적으로는 첫째, 북한과의 관계에서 남북회담의 의제로 인권문제와 관련된 내용을 경제협력과 결부시켜 반드시 논의하도록 노력할 것이며 둘째, 유엔인권관련기구와 세계인권NGO단체들을 통하여 중국의 인권인식을 높여 북한의 인권개선에 압력을 가하도록 조정하며, 끝으로 탈북자를 중심한 대단위 정착촌을 조성하여 자급자족의 공동체 경제사회구성을 하도록 계획해야 할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첫째, 정부는 국내의 인권관련 단체들의 국내외적 활동을 도와주고 둘째, 국내기업체들의 인권단체들에 대한 경제적 후원을 활성화하고 셋째, 탈북자들의 남한정착과정에서 일반가정 대 탈북가정 또는 남한주민 대 탈북자간의 자매결연 운동을 전개하고 끝으로. 남북이산가족 교환방문에서도 고향까지 방문하는 것을 회담원칙으로 해야만 한다.

사실, 그동안의 남북회담이나 교류는 남북한 공히 순수한 동족간의 인도주의나 애국주의보다는 정치적인 목적에서 이루워져 왔기에 지금과 같은 난맥상에 이르고 있다.

김대중정부의 대북정책에 있어서도 남북간의 모든 문제를 정치코드로만 적용한 결과 경제와 문화코드마져 원만한 상호교류와 발전이 안되고 있다고 본다. 김정일체제의 본질과 생리로 볼 때 관심(interest in)보다는 오히려 무관심(indifferent to)이 남북통일을 위한 조건개선에 더 효과적이라고 본다.

김대중대통령은 남북통일에서 한 개의 초석을 놓는 것으로 사명을 다했다고 생각하시고 그 위에 집을 짓는 것은 차기정권으로 넘기는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 따라서 지금부터 임기 동안의 할 일은 인권투쟁으로 평생을 살아온 대통령답게 북한의 처참한 인권개선에 전력을 다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첨부>

"길수가족구명운동본부"의 결성과 활동개요

1. 설립취지

生死의 岐路에 처하여 이국땅에서 헤메고 있는 불쌍한 동족을 보고 100가지의 이론보다 1가지의 실천이 그들에게 절실함을 깨닫고, 우선 그들의 배고픔부터 도와줌과 동시에 더 나아가 북한인권의 최악 상태를 개선하는데 하나의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되고자 뜻을 모아 조용히 출발하였음.

2. 설립과정(계기)

■현재, 구명운동본부의 사무국장(문국한)이 1994년부터 1년 계획으로 조·중국경지역발해유적지 답사여행을 하는 동안 만주지역에 숨어사는 탈북자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보고 구원활동 모임을 만들려는 계획을 갖게 됨.

■1996.8.15 ― 북한주민돕기후원회(울바자회)를 결성하고 소수의 회원중심으로 성금을 모아 각종 식료품과 생활잡화를 구입하여 탈북자들에게 전달.

■1997.3∼1999.1 ― 함북, 회령에 살던 길수군의 외할머니가 중국연변으로 탈북함. 대가족이면 한국정부가 쉽게 받아준다는 말을 듣고 재입북하여 남편과 가족을 데려오기 시작. 길수를 비롯한 일가친척 15명(길수가족 3명, 외할머니가족 3명, 이모부가족 4명, 외할아버지 여동생가족 5명)으로 불어남.

■1999.8 ― 중국 조선족 부인(채신영)의 이상한 꿈과 현실의 일치. 구명운동본부 문국장과의 만남.

■2000.3 ―〈길수가족구명운동본부〉결성.

3. 활동개요와 계획

■1998.06 ― 북녘동포들의 구원요청의 편지로 엮은〈삼가 눈물로 올립네다〉책 발행.

■1999.09 ― 탈북자들의 실상과 북한인권문제를 다루는 내용과 구원활동에 관한 소식〈SOS·111〉를 발간.

■1999.10 ― 서울서 개최된 세계 NGO대회에서 길수그림을 중심으로 전시회 개최.

■1999.11 ― 미국 NewYork의 UN본부 광장에서 길수그림을 통한 북한실상 소개 전시회.

■ 2000.03 ― 정선미(길수군 어머니)등 5명 강제북송당함.

■ 2000.05 ― 길수군의 그림책〈눈물로 그린 무지개〉(문학수첩) 발간, 인지대로 후원금 보충.

■ 2000.06 ― 서울 용산의 전쟁기념관 특별전시회에서 길수군 그림 특별전시회 개최.

■ 2000.09 ― 길수가족 한국입국을 위해 5차례나 UNHCR북경지부를 방문.(망명요청 거부당함)

■ 2000.10 ― 영국의 TV와 〈가디언〉지에 탈북가족에 대한 방송과 특집기사화.

■ 2001.04 ― 길수가족 13명, 몽골잠입시로 실패.

■ 2001.06.26 ― 길수가족 7명, UNHCR북경지부에 진입 망명인정요구.(문국한 국장 인솔)

■ 2001.06.30 ―길수가족7명, 제3국을 통하여 남한으로 입국.

■ 2001.07.02 ― 몽고를 거친 3명과 서울서 재회.

■ 2001.08 ―〈길수군 어머니 구명운동본부〉결성 활동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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