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2일부터 평양에서 남북 정상이 만난다. 분단 후 반세기 만의 첫 만남이니 ‘역사적’이라는 표현을 주저할 필요가 없다. 남북관계뿐 아니라 세계정세에도 중대한 변화가 올 수 있다. 국내외의 관심이 쏠리는 것도 당연하다. 후세 역사가들이 진정 ‘역사적’이었다고 쓸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번 만남의 가장 큰 의의는 역시 분단 극복의 초석을 놓는 일일 것이다. 통일을 위해선 화해 협력이 필요하고, 화해와 신뢰는 자주 만나야 구축된다. 상대를 찾아가고, 상대를 받아준다는 것 자체가 이미 화해와 신뢰의 진전을 뜻한다. 우선 이 대목이 중요하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분단의 극복에는 이상과 현실의 갈등이 엄연히 존재한다. 지난 반세기의 통일운동이 실패로 끝난 것은 이상에 치우친 감상주의와 일시적 권력 안정을 위한 공리주의가 평행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통일운동은 원대한 이상과 치밀한 전략 위에서 단계적으로 이루어질 때 실효를 거둔다. 그리고 반드시 민족의 표준적인 정서와 민심의 지지가 수반되어야 한다. 민족적 정체성과 정통성을 확실하게 가지고 임해야 신뢰와 존경을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날 이 점에서 미비점을 드러냈다는 것을 솔직하게 반성할 필요가 있다.

북한을 이념 집단으로만 보는 것은 현명하고 올바른 판단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와 말이 같고, 정서가 같고, 뿌리가 같은 동족이라는 것을 먼저 이해하고, 그 공감대의 폭을 넓혀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조건과 방법을 결여한 접근은 결과적으로 일회적인 행사로 그칠 것이고, 남는 것은 허탈감이다.

역사는 위대한 교사다. 지난 반세기의 실패경험을 먼저 철저하게 반성할 필요가 있다. 현대사 이전의 우리 역사는 민족 통일을 단계적으로 발전시켜온 역사다. 그 통일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 것도 우리의 지혜를 넓히는 길이다.

신라는 내부 통합의 성공을 바탕으로 삼국을 통일했으나 전쟁 수단을 쓴 것이 한계로 작용하여 후삼국의 분열을 가져왔다. 고려는 전쟁과 포용을 병행하여 후삼국을 재통일했지만 정신적 통일은 이루지 못하여 고구려 계승의식과 신라 계승의식의 갈등을 해소하지 못했다.

조선은 고도로 세련된 문화정책과 사회정책으로 분열된 사회를 재통합했다. 전보다 한 단계 성숙한 민족 통일을 이룩한 것이다. 민족문화의 뿌리인 고조선 문화를 발견하고, 성리학 사상 속에 홍익인간(홍익인간) 이념을 담아 정책으로 구현한 것이 바로 조선왕조다. 각각 삼국의 유민(유민)이라는 지역의식이 이때 비로소 극복되었고, 이런 문화 정책의 힘이 519년이라는 장수를 담보한 것이다.

미래의 통일은 평화통일이요, 그것은 조선시대보다도 더 성숙한 문화 능력을 필요로 한다.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효과는 문화적 접근에서 발휘된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남북의 정서를 가장 편안하게 묶어주는 민족문화를 적극적으로 개발하여 교류의 폭을 넓히는 것이 급선무다. 공연예술뿐 아니라 고고학의 교류나 규장각 자료의 상호이용 등과 같은 학술적 교류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와 병행하여 경제, 환경, 스포츠, 과학기술 등 실용적인 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강화하여 서로의 복지를 증진시킨다면 남북의 이질적 요소와 불신감은 저절로 완화될 것이다.

매사는 ‘과유불급(과유불급)’이요, ‘과공(과공)은 비례(비례)’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가시적인 성과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 우려도 있다. 큰 일을 치를수록 우리의 정체성과 명분을 잃지 말아야 한다. 당국과 언론은 이 점을 특별히 유념하여 국민 정서를 혼란에 빠뜨리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상과 현실은 지혜롭게 양립되어야 이상도 살고 현실도 사는 것이다.

/ 한 영 우 서울대 인문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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