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이번 유엔 결의에서는 나와 아소 외상이 더블A(합작)로 원칙을 정해 유엔 외교에서 처음으로 주도권을 장악했다.” 차기 일본 총리로 거의 확정된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이 지난달 28일 자민당 도쿄 블록대회에서 강조한 말이다.

일본 신문들은 유엔안보이사회가 대북 결의를 채택하기까지 아베는 미국 백악관의 해들리 보좌관, 아소는 라이스 국무장관과 전화는 물론 휴대전화 이메일까지 써가며 이원(二元)외교를 벌인 것을 자세히 보도하고, 아베와 아소 간에 벌이는 2인 3각 외교가 차기 정권에서도 계속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아베-아소의 합작정치가 화제겠지만, 한국의 입장에서는 일본이 ‘유엔 외교에서 처음으로 주도권을 장악’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유엔 분담금은 회원국 중 두 번째로 많이 내고도 존재감이 없었던 일본, 그런 일본이 이제 북한 미사일 장난 덕분에 유엔 외교에서 주도권을 발휘하는 전후 첫 위업(?)을 달성했다.

고이즈미, 아베, 아소, 이른바 전후파(戰後派) 극우들에겐 북한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일까. 김정일 선군(先軍)정치의 핵과 미사일 장난이 오래 끌어야, 이들이 바라는 헌법개정, 자위권 행사, 핵무기 개발, 야스쿠니 정당화, ‘자학’ 역사교과서 개정 등을 착착 진행할 수 있다.

아마도 김정일의 선군정치와 장기집권을 바라는 것이 일본과 중국의 진정일 것이다.

북한 영변 원자로에서의 농축 우라늄 제조를 계기로 북한 핵위협이 시작된 1992년 이후 14년의 경과를 되돌아보면, 북한 핵 게임에서 덕을 본 것은 중국과 일본뿐이다.

베이징 6자 회담은 중국 입장에서 보면 김정일 덕분에 세계 대국 외교의 주인공이 되는 첫 주도권 행사였다. 1840년 아편전쟁 이후 중국의 대외관계는 끊임없는 모욕과 패배와 천대뿐이었다. 한번도 국제무대에서 주인공 입장이 된 적이 없었다.

그러나 2003년 8월 27일 6자회담은 중국이 미국, 일본, 러시아, 바로 중국 현대사에서 최대 모욕과 패배를 안겨주었던 대국들을 베이징에 불러 주인 노릇을 하는 자리였다.

실로 베이징으로서는 163년 만에 19~20세기에 걸친 치욕의 역사를 청산하고 대국외교의 무대로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1996년 북경에서 열린 비공식 모임에서 당시 공산당의 한반도 담당 책임자였고 지금은 외교부 최고위급 책임자로 있는 분이 “한반도 통일 뒤에도 미군의 한국 주둔을 인정하겠다”는 말을 해서 놀란 적이 있다.

우리들에게 “이 말을 미국 친구들에게 전해도 좋다”고까지 했다. 그만큼 한반도에서의 미국 주도권을 당연시했었다.

2002년 제 2차 북한 핵 위기 이후 6자회담을 계기로 중국은 이제 북한만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에 대한 주도권을 넘보는 위치로 뛰어오르고 있다.

거꾸로 최근 미국 국무부 힐 차관보의 “북한에 변화가 와도 미국이 한반도에서 상황변화를 주도하지 않겠다”는 발언은 중국의 대(對) 한반도 영향력 변화를 인정하겠다는 것을 공식 선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장난 14년’의 햇볕은 일본과 중국에 쬐었고, 그 그늘은 대한민국과 한미동맹에 드리워졌다.

전후 일본 우익의 원형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는 이미 1970년 방위청장관 시절 ‘일본 헌법도 방어용 핵무기는 금지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을 폈다.

아베도 나카소네를 따라 “원자폭탄이라도 소형이라면 헌법상 문제가 없다”는 말을 2002년에 했다. 그런 아베가 수상이 된다. 동아시아에 핵구름이 어른거린다.

아베가 수상이 되기까지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와 핵 미사일 장난이 최대 먹잇감이었다. 결과적으로 김정일 선군정치는 최고의 친일 반(反)민족주의 역할을 가장 성공적으로 수행한 셈이 됐다.

한민족의 안전과 평화와 통일이 아닌 일본과 중국을 위해 민족의 이익을 배반하는 1인 독재 북한, 그런 북한체제의 변혁문제는 한국 21세기 민족주의가 가장 우선해야 할 정책이다. 방법은 세련되고 표현은 온건해야 하나 의지는 확실해야 한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