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천 논설위원 kckim@chosun.com

1959년 쿠바혁명 직후 독일 여객선 ‘베를린’호가 쿠바 아바나항에 닻을 내렸다. 무슨 일인지 33세의 혁명지도자 피델 카스트로가 그 배를 찾아왔고 선장의 19세 딸 마리타 로렌츠를 만났다.

첫 아내와 이혼하고 홀몸이었던 카스트로는 마리타와 사랑에 빠졌고 몇 달간 꿈 같은 시간을 보냈다. 9개월 뒤 만삭의 마리타는 누군가에 의해 강제 유산을 당했다. 두 사람은 헤어졌다.

▶다시 몇 달이 지나 마리타가 아바나 호텔에 머물던 카스트로를 찾아왔다. 카스트로를 죽이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미국 CIA 요원이었던 어머니에 이어 CIA에 포섭돼 암살 지령을 받았다. 그러나 마리타는 호텔방에 들어서자마자 독약 캡슐을 비데에 버렸다.

그녀는 훗날 “카스트로에 대한 증오보다 사랑이 더 컸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마리타는 미국으로 돌아가 CIA의 반(反)카스트로 공작에 계속 참여했다.

▶1961년엔 카스트로혁명 때 쿠바를 탈출했던 망명자 1400여명이 쿠바 남서쪽 피그스만을 침공했다. 역시 카스트로정권을 무너뜨리려는 CIA의 공작이었지만 무참한 실패로 끝났다.

그 뒤로도 카스트로에 대한 암살과 정권 전복 시도는 끊이지 않았다. 카스트로는 2000년 기자회견에서 CIA와 쿠바 망명자단체로부터 600차례 넘게 암살 시도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목숨에 위협을 받으면서도 카스트로는 지하벙커에 숨어드는 식의 겁먹은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 대한 경호는 공산주의 국가지도자 중에 가장 허술한 편에 든다는 평이다. 대신 카스트로의 가족들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 있다.

두 번째 부인과 그 사이에서 낳은 다섯 아들 모두 한 번도 공개석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쿠바 언론에 그들의 사진이 실린 일도 없다. 공직에도 나서지 않고 있다.

▶올해 80세인 카스트로는 얼마 전 “100세 넘어서도 집권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100세까지 살면서 권력을 놓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카스트로가 건강이 좋지 않아 혁명동지이자 친동생인 국방장관 라울에게 권력을 넘겼다고 한다. 장(腸) 수술을 받기 위한 임시조치라곤 해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600차례 암살 기도를 이겨냈다고 자랑하며 47년을 군림해온 ‘불사조’ 카스트로도 세월 앞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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