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민간단체 사이에서 북한의 수해 피해를 지원하려는 움직임이 점차 활발해지는 가운데 정부의 동참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정세현 상임의장은 2일 북한의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에 대해 지원결정을 내린 뒤 “정부가 쌀·비료 제공을 재개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수재 복구를 위한 자재나 물자를 보내는 것은 바람직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는 북한 수해 피해 상황과 민간단체의 움직임을 면밀히 주시하면서도 아직까지 북한 수해 복구 지원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예년 같으면 인도적 차원에서 수해 발생 즉시 남북협력기금을 이용해 대한적십자사의 북한 지원 활동을 도왔을 가능성이 크지만 올해는 미사일 사태 등으로 상황이 꼬일대로 꼬여 운신의 폭이 상당히 좁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더해 북한의 불분명한 속내는 정부의 결정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북한은 대한적십자사가 지난달 26일 국제적십자연맹을 통해 전달한 수해복구 지원 제안은 거부한 대신 국제구호단체인 한국JTS의 긴급 구호는 수용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쌀과 비료 지원을 유보한 우리 정부의 조치에 대해 크게 못마땅해하고 있는 북한이 적십자사의 지원마저 관(官)의 성격이 짙다는 이유로 외면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따라서 정부가 섣불리 지원을 제안했다가 북한으로부터 ’인도적 지원인 쌀과 비료는 주지 않으면서 무슨 인도적 수해 복구 지원이냐’는 대답만 들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남측 여론도 상당히 신경쓰인다.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수해 복구지원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은 대북 화해협력에 적극적인 일부 단체에 국한된 모양새고 이를 국민 여론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지 않느냐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벌써 미사일을 잊었느냐’는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

아직 강원도 등 남쪽의 수해 복구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또 대북 지원에 대한 국제사회의 여론도 무시할 수 없다.

북한은 ’후속 방문을 통해 제대로 수해민들에게 전달됐는 지 여부를 확인하겠다’는 조건 때문에 이재민들에게 긴급구호 식량을 제공하겠다는 세계식량계획(WFP)의 제의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적 수해 복구 지원에 대해서마저 북한이 이처럼 ’불투명한 사회’의 모습을 유지하는 이상 우리 정부의 수해 복구 지원 의지를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 곱게 봐주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북한의 엄청난 수해를 강건너 불보듯하는 것은 대북 정책의 골간인 화해협력 기조에 어울리지 않아 정부의 고민은 이래저래 깊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휴가중인 이종석(李鍾奭) 통일부 장관은 3일 청사로 출근해 간부회의를 주재할 예정이어서 이 자리에서 북한 수해 복구와 관련해 의미있는 결정이 내려질 지 주목된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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