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KAL 858기 폭파사건’, ‘남한 조선노동당 사건’ 조사발표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1일 오전 세곡동 국정원 청사에서 ‘KAL 858기 폭파사건’과 ‘남한 조선노동당 사건’에 대한 조사결과를 공식발표하고 있다./연합


새로 공개된 김현희 화동사진..공범 김승일 1984년 서울잠입

‘KAL858기 폭파사건’에 대한 ‘국가정보원 과거사 진실규명을 위한 발전위원회’(진실위)의 1일 중간 조사결과에서 KAL기 폭파사건의 주범인 김현희가 북한의 공작원임을 입증하는 새로운 ‘화동’(花童) 사진이 발굴됐다.

이를 통해 기존에 안기부(국정원 전신)가 발표했던 사진을 포함해 일부 공개된 사진속의 화동소녀가 김현희가 아니었다는 사실과 북한측의 사진변조 등도 함께 드러났다.

또 북한 공작원이었던 김현희의 외고종조부가 국내에 거주했고 그녀가 사면 이후 외고종조부의 집에서 일정 기간 거주한 것으로 드러나 김현희 일가의 실체에 대한 새로운 궁금증이 일고 있다.

이와 함께 사건 직후인 1987년 12월1일 바레인 공항에서 음독자살한 공범 김승일 역시 북한 공작원으로 이미 1984년 해외적응훈련의 일환으로 서울에 잠입했었던 사실도 드러났다.

다음은 진실위의 중간조사를 통해 드러난 새로운 사실들이다.

◇‘김현희 花童’ 새사진 발굴..북측 사진 변조 = 그동안 1972년 11월2일 평양에서 열린 제2차 남북조절위원회 당시 남측 장기영 대표에게 꽃을 전달한 북측 화동소녀 가운데 한 명이 김현희라는 사실이 추가 발굴사진을 통해 확인됐다.

진실위는 남북조절위 개최 당시 일본 공산당 기관지인 ‘적기’(赤旗)의 평양 특파원이었던 하기와라 료가 보관하던 총 36장의 사진 가운데 그동안 미공개됐던 사진에서 화동 소녀 김현희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안기부가 1988년 1월5일 KAL858기 폭파사건 수사발표 당시 제시했던 사진과 하기와라 료가 촬영한 사진중 김현희 본인이 ‘자신이다’고 진술했다는 사진속의 소녀는 김현희가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고 진실위는 설명했다.

또 하기와라 료로부터 확보한 사진을 통해 북한이 1988년 3월 정희선을 내세워 기자회견한 자리에서 제시한 사진속 소녀의 모습이 변조된 것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진실위는 특히 안기부가 공개한 사진속 인물이 김현희가 아닌 것으로 드러난 것에 대해 “안기부가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홍보를 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착오”라고 결론지었다.

◇국내에 김현희 외고종조부 거주 = 국내에 김현희의 외고종조부가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 새롭게 확인됐다.

진실위는 김현희가 1990년 4월12일 특별사면된 이후 사회정착에 대비해 1995년 4월부터 외고종보부 김모(1990년 당시 73세)씨의 집에 입주해 살았다고 밝혔다.

김씨는 김현희의 입주로 늘 주위를 살펴야 하는 정신적 긴장 등으로 생활에 제약을 받자 고령 및 노환을 이유로 1997년 12월31일까지 김현희의 결혼 또는 분가를 강력히 요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진실위측은 설명했다.

김현희는 이에 따라 1997년 12월28일 교제해오던 전직 안기부 직원과 결혼했다.

이에 따라 북한 공작원으로 결론난 김현희 일가의 실체에 대한 새로운 궁금증이 일고 있다.

안기부는 김현희가 사면된 후인 1990년 6월 김현희의 결혼문제를 포함한 ‘김현희 활용 및 정착지원 마스터플랜’을 작성해 김씨를 관리해왔으며 1995년 4월 김씨에 대한 신병보호를 경찰에 이첩한데 이어 김씨가 결혼한 1997년 12월부터는 김씨에 대한 관리도 중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현희는 2003년 11월 모 방송사가 거주지 및 시댁 등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피신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KAL 858기 폭파사건 조사를 위한 면담요청을 거부하고 있다고 진실위는 덧붙였다.

김현희의 부친으로 알려진 김원석은 1962년과 1965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근무했던 사실이 확인됐지만 김현희가 진술한 앙골라 주재 무역대표부 수산대표인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공범 김승일 폭파사건 3년전 서울잠입 = KAL858기 폭파사건의 공범으로 사건 직후인 1987년 12월1일 바레인 공항에서 음독자살한 김승일은 1984년 ‘하치야 신이치’라는 일본인으로 위조여권을 만들어 공작원 해외 적응훈련의 일환으로 서울에 잠입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안기부는 김승일의 실체 파악을 위해 1989년 7월부터 1년동안 일명 ‘악어공작’을 펼쳐 그가 황해도 재령 명신중학교와 평양 대동공업 전문학교를 졸업한 김일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진실위는 그러나 KAL858기 폭파사건 공범 김승일과 김일선이라는 인물이 동일인인지에 대해서는 일본 과학경찰연구소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이 일치하지 않는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안기부의 감정의뢰를 받은 일본 과학경찰연구소는 김승일과 김일선의 인물사진이 외관상 안면 형태가 동일하고 얼굴 치수 등 비율이 일치한다는 소견을 제시했다.

이에 반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지난달 초 김일선의 명신중.대공공전 시절 사진과 1987년 촬영한 사진의 연령차가 많고 해상도도 떨어져 동일성 여부를 판단하기 곤란하다는 감정을 내렸다.

◇‘입술 피범벅’된 김현희 음독상황 = 김현희의 음독 상황이 비교적 자세히 묘사된 바레인 정부의 ‘KAL858기 수사보고서’도 공개됐다.

1988년 1월6일 바레인 정부가 제공한 이 자료에 따르면 1987년 12월1일 김현희와 김승일은 바레인 공항에서 출국수속을 받다 경찰에 연행됐다.

바레인 경찰이 조사를 위해 김현희로부터 담뱃갑을 빼앗아 담배 한 개비를 부러뜨리는 순간 김현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오른손으로 부러진 담배를 낚아챈 뒤 뒤로 넘어지면서 담배조각을 입에 넣었다.

김현희가 낚아챈 담배에는 가스 형태의 청산염 앰플이 들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주변에 있던 경호원들이 김현희의 입속에 든 물질을 빼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입을 굳게 다문 김현희는 순식간에 몸이 굳어지면서 쓰러졌다.

당시 김현희의 입술은 피로 범벅이 돼있었다고 수사보고서는 적고 있다.

김현희는 즉시 바레인 살마니아 병원으로 이송돼 응급처치를 받은 뒤 바레인 육군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깨어났다.

바레인 정부가 수사결과 보고서와 함께 제공한 또 다른 보고서(The Forensic Science Laboratory)에는 김현희의 위 세척물과 혈액, 소변을 검사한 결과 소변에서만 청산염 양성반응이 나왔다고 기록돼 있다.

진실위는 김현희의 위 세척물에서 청산염이 검출되지 않은 것은 청산 독약 앰플이 기체 상태로 소량 흡입되고 음독 현장에서 위 세척물이 다량으로 사용됐을 경우 가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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