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가 1일 ‘KAL858기 폭파사건’ 중간 조사결과를 발표해 꼬리를 물었던 각종 의혹이 어느 정도 규명됐지만 김현희씨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못하면서 의혹을 깨끗이 털어내지는 못했다.

진실위는 김현희 ‘화동(花童)사진’의 진위논란과 관련, 새로운 사진을 확보해 북한 출신임을 확인하고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흔적도 발견했지만 공범으로 지목된 김승일의 정확한 신원이나 두 사람이 바레인에서 보인 행적을 둘러싼 의혹, 폭발물 내역 및 추락과정 등은 과제로 남겨둔 것이다.

진실위는 이에 따라 김현희씨의 증언을 촉구하고 미진한 부분에 대해서는 사건 발생 19년이 되는 11월 29일 전에 최종 조사결과를 발표하겠다는 방침이다.

◇ 의혹 왜 생겼고 조사는 어떻게 = 의혹은 그동안 KAL858기 관련 단체 등이 사건 재수사와 수사자료 공개 등을 요구했는데도 불구하고 안기부와 검찰이 ‘사건의 본질에는 변함이 없다’며 거부했고 이 과정에서 정부가 실체를 숨기고 있다는 의구심이 부풀려지면서 누적된 것으로 진실위는 판단했다.

이 때문에 KAL기 시민대책위가 102건의 의혹을 내놓은 것을 비롯, 시중에 시판된 책자나 언론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갖가지 의혹이 제기되면서 모두 322건의 의혹이 쏟아져 나왔다.

진실위는 이를 168개 의혹으로 종합했지만 국정원 등 관련기관의 보유 자료를 검토해 나가는 과정에서 추가 확인이 필요한 새로운 의혹이 182건이 나오면서 다시 350건으로 늘어나게 됐다.

이에 따라 크게 5개 범주로 나누고 최종적으로 조사할 의혹을 182건으로 정리했다.

이 중에는 김현희.김승일의 신원 및 배후세력의 실존 여부와 관련된 의혹이 91건으로 가장 많았고 안기부와 제3국이 사전 움직임을 포착했거나 공작이 있었는지 여부에 대한 의혹도 31건이나 됐다.

의혹의 가짓수가 많은 만큼 진실위는 국정원 보유 자료 12만8천여 쪽과 검찰.법원.외교부.대한항공 등 타기관 자료 보고서 등 모두 15만쪽이 넘는 자료를 검토했고 관계기관 전현직 직원과 유족, 폭탄 전문가 등 90여명에 대한 면담조사도 병행했다.

◇ 안기부 사전 인지 근거 없어 = 안기부가 사전에 알았다는 의혹은 1987년 11월 29일 당시 정치상황과 북한의 ‘남한 정권 자작자연극’ 주장 등 때문에 제기됐다.

진실위는 우선 안기부 직원이 별도의 폭탄을 비행기에 실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안기부 직원의 탑승이나 폭탄으로 의심되는 화물이 탑재된 바 없다는 이유 등을 들어 사실무근으로 판단했다.

특히 사전인지설의 핵심 의혹이 돼 온 ‘아부다비에서 고위 외교관을 내리게 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당시 KAL기에 탑승했다 사망한 강석재 이라크 총영사 부부를 빼고는 중동과 유럽, 아프리카지역 공관장이 모두 11월 29일 이전에 입국한 것으로 확인돼 ‘근거 없다’는 판단이 나왔다.

바그다드-아부다비 구간에 탑승한 승객도 안기부 발표처럼 15명인 것으로 드러났다. 애초 25명이라는 주장은 실제 탑승객이 아닌 예약자 명단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진실위는 말했다.

정부 당국의 전문을 봐도 안기부 쿠웨이트 파견관 등이 두 김씨의 행적에 의심을 갖고 추적하기 시작한 시점은 사건 당일 오후이며 이들의 여권 속에 나온 일본 입출국 스탬프가 위조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사건 이후인 12월 1일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함께 두 김씨가 헝가리 내 북한 공관원의 자택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제3국 정보기관이 파악한 시기는 1988년 1월 김현희와 두 차례 면담한 뒤였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진실위는 설명했다.

다만 진실위는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북한인 추정 인물이 모스크바, 부다페스트, 베오그라드, 바그다드, 아부다비 등을 돌아다니고 있다’는 첩보에 대해서는 조사가 더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놓았다.

또 두 김씨의 행적이 파악되기 전인 1987년 11월 29일 바레인 리젠시호텔에 두 차례에 걸쳐 ‘미스터 하치야’를 찾는다며 전화한 사람의 신원에 대해서도 확인하지 못했다.

◇ 김현희 북한 출신 확인 = 김현희가 ‘안기부 공작원’이라는 주장은 김씨가 북한 출신임을 보여주는 새로운 미공개 화동 사진을 확보하면서 일단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1972년 11월 남북조절위원회 당시 남측 대표단에게 꽃다발을 준 북측 화동 중에 중학생인 김현희가 있었음을 당시 일본 공산당 기관지의 평양 특파원이 보관 중이던 사진 36장을 진실위가 지난 4월초 새로 입수하면서 확인했다는 것이다.

다만 안기부가 1988년 1월 수사발표 때 제시한 사진 속의 소녀는 김현희가 아니라 안기부가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홍보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착오였던 것으로 진실위는 판단했다.

또 김현희가 북한 여권명으로 진술한 ‘김옥화’가 모스크바에서 부다페스트로 이동한 사실도 입증됐다. 그러나 공범으로 지목된 김승일의 헝가리 입국 사실은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김승일이 사용한 하치야 신이치의 위조여권 제작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진 재일교포 이경우는 친북 인물로 1985년 평양에서 사망했다는 보고 문건이 확인됐다.

특히 국정원 문건 중에는 김승일의 정확한 신원과 주변 인물의 대공 용의점을 파악하기 위해 1989년 7월부터 1년 간 추진된 이른바 ‘악어공작’ 문건의 내용에 비춰 두 김 씨를 안기부 공작원이나 이중간첩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진실위는 판단했다.

그러나 수사발표 직후에 제기된 김현희의 이력이나 그녀의 아버지 신원, 바레인 행적 등에 대해서는 김씨를 면담하지 못하면서 명확히 규명하지 못했다.

◇ 폭탄테러 추정엔 무리 없지만 바레인 행적은 의혹 여전 = 비행기 실종 원인으로 폭탄테러, 기상악화, 기체결함, 납치 등이 제기됐지만 날씨가 좋았고 납치라면 협상 제의가 있었을 것이라는 점 등을 들어 폭탄 테러에 의한 추락이라는 추정에는 무리가 없다고 진실위는 판단했다.

또 두 김씨가 체포를 피하기 위해 음독한 점, 김씨의 진술 등에 비춰 이 두 명이 폭파범이라는 심증을 갖기에는 무리가 없으며 김현희가 폭탄이 든 라디오를 갖고 탑승한 것도 확인됐다.

그럼에도 김현희.김승일의 바레인 행적을 둘러싼 의혹은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 블랙박스 등 물증이 보강되지 않으면서 사고 실체에 대한 의문점은 아직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KAL858기로 추정되는 인공조형물을 최근 미얀마 현지조사를 통해 확인함에 따라 오는 10월 잠수 작업을 통해 KAL858기 잔해로 확인된다면 명확한 원인과 진상 규명이 이뤄질 것으로 진실위는 기대했다.

◇ 폭탄 양은 임의 추정치 = 안기부가 밝힌 폭발물 양인 C4 350g과 액체폭약 700cc는 김현희의 진술에 근거해 당시 안기부가 임의로 추정한 것으로 진실위는 봤다. 김현희는 안기부 수사과정에서 폭탄의 정확한 양과 종류에 대해서는 직접 진술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현희가 라디오와 술병으로 위장했다는 폭발물 가운데 라디오 반입은 바그다드 공항 직원의 증언을 보고한 문건 등으로 확인되지만 술병의 기내 반입은 김현희 진술 외에 확인해 주는 문건은 없었다는 게 진실위 설명이다.

진실위는 “김현희.김승일이 폭발물을 기내에 반입했다면 그 폭발물은 검색에 걸리지 않는 플라스틱 폭탄으로, 안기부 수사발표 당시의 양보다는 적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 동체 잔해, 국과수가 규정 따라 폐기 = 1987년 12월 13일 발견됐다는 구명보트의 발견시점과 1990년 3월 동체 잔해의 발견 및 그 폐기를 놓고도 의혹이 제기돼왔다.

진실위는 구명보트가 김현희 압송시점에 발견된 것은 우연의 일치로 판단했다.

또 구명보트의 상태에 대해서는 불에 탄 흔적이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고 국정원이 2004년 KAL기 유족회의 질의에 대해 ‘파편이 뚫고 지나가며 파손시킨 것’이라고 답한 것도 사실과 거리가 있는 것으로 봤다. 구명보트는 국과수가 1987년 12월 18일 감정한 대로 압축에 의해 파손된 것으로 진실위는 봤다.

1990년 3월 발견된 동체 잔해 역시 KAL858기의 잔해임을 진실위는 확인했다.

이 잔해를 김현희에 대한 대법원 판결 직전에 발견한 것이 안기부의 공작일 것이라는 주장과 관련, 진실위는 “1990년 3월19일 안기부가 작성한 ‘김현희 대법원 사형확정시 구제방안 검토’ 문건 등에는 잔해 발견으로 인해 오히려 ‘진정된 사건이 재론돼 유가족의 집단행동 징후도 있으므로 특별사면 시기를 늦추자’는 내용이 있는 점에 비춰 근거가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동체 잔해 폐기는 안기부가 국과수 감정 후에도 인수하지 않자 국과수가 5년 정도 보관하다가 자체 규정에 따라 폐기 처분한 것으로 확인됐다.

◇ 대선 이용 확인..‘안기부-김현희 밀약설’ 의혹은 여전 = 사건이 당시 집권당의 노태우 대통령 후보의 선거에 정치적으로 이용됐다는 의혹은 1987년 12월 2일께 수립된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북괴음모 폭로공작(무지개공작)’ 계획 문건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사실인 것으로 판단할 수 있었다는 게 진실위의 설명이다.

진실위는 특히 12월 10∼13일 범인 인수 시점에 맞춰 수립된 ‘KAL기 폭파사건 관련 북괴만행 규탄 궐기행사 개최계획’ 문건을 통해 안기부 주관 아래 내무.국방.문교.문공.상공.교통부와 서울시, 치안본부 등이 12월 6∼13일 태스크포스를 설치 운영한다고 명시돼 있는 점을 찾아냈다.

또 김현희를 대선 하루 전 날인 12월 15일까지 압송해 오기 위해 안기부와 외무부가 외교적으로 노력한 흔적도 당시 전문을 통해 확인됐다.

그러나 ‘안기부와 김현희의 밀약관계’와 관련한 의혹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다만 진실위는 안기부가 김현희를 기소하기 전인 1988년 11월 관계기관의 사법처리 방안 협의를 통해 김씨를 “폭파 만행의 산 증인으로서의 활용가치 등을 고려해 살려서 활용한다는 원칙 아래 실형 확정과 동시에 구제한다는 방침을 결정했다”는 점을 확인했다.

또 안기부는 1심의 사형판결 이후 ‘사형 확정에 대한 사면은 통치권에 부담이 된다’며 2심에서 무기 이하의 형을 선고토록 법원을 설득하려 했지만 법원이 2심과 3심에서 모두 사형을 선고했다고 진실위는 설명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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