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서울에 안착(안착)한 탈북 장길수(17·가명)군이 보름전쯤 서로 다른 탈출길을 찾기로 하고 헤어졌던 형 한길(20)씨와 이날 밤 서울에서 다시 만났다.

지난달 26일부터 중국 베이징의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 사무실에서 나흘간 농성한 끝에 ‘제3국행 출국 허가’를 받았던 길수 가족 7명은 싱가포르와 필리핀 등을 거쳐 30일 오후 서울에 왔다. “유엔 사무실 농성은 아무래도 위험하다”며 다른 탈출길을 찾아 나선 한길군 일행 3명은 중국과 국경을 맞댄 ‘제3국’에 밀입국한 후 지난달 29일 서울에 왔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길수군의 형 한길씨와 외삼촌 정대한(27), 이종사촌형 리민국(19)씨 등 3명은 지난달 29일 입국했으며, 이들은 30일 입국한 길수가족 7명과 다시 만나 상봉의 기쁨을 누렸다”고 밝혔다. 정부는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한 채 서울시내 모처에서 길수 가족들에 대해 건강 진단을 실시하고 안정을 취하도록 하는 한편, 이들의 탈북 경위와 도피 생활 등에 대한 조사도 병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길수군의 외할머니 김춘옥(66)씨는 30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도착 후 7명 가족을 대표해 “정말 이렇게 한국 땅을 밟으니 인생이 다시 태어난 것 같습니다”라며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짤막한 ‘서울 도착 소감’을 발표했다. 이들은 당국이 준비한 버스를 타고 공항을 빠져나가며 창문을 통해 환영하는 시민들에게 손짓을 하기도 했다.
지난 4년여 동안 길수 가족에게는 사선을 넘나드는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됐다.

지난 97년 3월 외할머니와 외삼촌 정씨가 두만강을 넘어 중국 동북지방으로 떠난 것이 시작이었다. 99년 1월 길수, 같은해 8월 한길군이 중국 연변의 은신처로 도망쳐 나오는 등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4가족 15명이 탈북한 것이다.

도피 생활 중 태어난 한국(1)이까지 모두 16명에 이르는 일가족 중 서울에 안착한 사람은 모두 10명. 지난 5월 중국 공안당국에 붙잡혀 북한으로 송환된 길수 어머니 정선미(45)씨 등 2명은 ‘남쪽 사람들과 접촉했다’는 이유로 정치범 수용소에 수용돼 있고, 한국이 등 2명은 “주도적으로 한 일이 없고 어리다”는 이유로 수용소로 가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길수군 아버지는 처음부터 탈북을 포기했다. 길수 가족들의 탈북·도피 계획을 세우고 이를 주도한 외할머니 김춘옥씨는 지난 3월 북한으로 강제송환됐지만, 5월에 다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또 길수 외조부의 여동생 정경숙(51)씨 등 2명은 중국에 머물고 있지만, 탈출 계획이 진행되던 지난달 초부터 연락이 끊긴 상태라고 ‘길수가족 구명운동본부’의 문국한(49) 사무국장이 전했다.
/ 최홍열기자 hrchoi@chosun.com
/ 박민선기자 sunris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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