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한·중 수교추진 통보 6개월후 “이해한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지난 2001년 9월 북한을 방문한 장쩌민(江澤民) 당시 중국 국가주석 겸 공산당 총서기에게 자신이 남한 답방을 하지 않은 것은 미 대선에서 조지 부시가 당선된 후 국제정세 변화로 답방 효과에 대한 예상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김 위원장의 이같은 발언은 30일 발간된 장 전 주석의 외교 실록 ’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 장쩌민 외교방문 실록(爲了世界更美好 : 江澤民出訪紀實)’에 실려 있다.
이 실록에 따르면, 지난 2001년 9월3-4일 국가주석 겸 당 총서기로서 두번째 방북한 장 주석과 회담한 김 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 방문 후 자신이 남한에 갈 것인가 말 것인가, 남한에 가게 되면 세계를 향해 “조선문제는 조선인민 스스로 충분히 해결할 능력이 있다고 밝힐 수 있겠다”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그러나 미 대선 이후 국제정세에 여러 가지 변화가 발생해 실제 방문 효과가 어떨 지에 대한 예상이 좋지 않았다고 자신이 약속했던 남한 답방을 하지 않고 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2001년 9월3일은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6.15 공동성명을 발표한 이후 1년3개월 가까이 지난 시점이다.

실록은 또 김 위원장이 1994년 7월 사망한 김일성 전 주석의 삼년상이 끝나고 조선노동당 총비서와 국방위원장에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북한 주재 중국대사와 면담한 자리에서 한·중수교(1992년 8월24일)에 대해 아무런 이의가 없다는 뜻을 밝혔다고 소개했다.

김 위원장은 중국대사에게 한.중 수교는 중국공산당이 결정한 사안으로서 “조선측은 0.001%도 의견이 없다. 나 자신 역시 아무런 의견이 없다. 다만 조·중 친선만 변하지 않으면 충분하다”면서 양국이 반드시 고위층의 상호방문 전통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 주석은 중국 국가주석 겸 당 총서기가 된 후 첫 외국 방문으로 1990년 3월14-16일 북한에 가 당시 김일성 주석과 만나 한·중관계에 관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해 양국이 양해에 이를 수 있기를 희망했으나 당시에는 북한측의 양해를 얻어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두 지도자는 당시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연속적인 붕괴사태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했다.

당시 한국에서는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된 후 구 소련 및 동유럽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특히 중국의 실질적 최고지도자였던 덩샤오핑(鄧小平)에게 편지를 보내는 등 한·중관계 개선에 아주 적극성을 보였다.

양국간의 무역액도 신속하게 증가하는 등의 정세 발전에 따라 상호 무역대표부를 설치는 불가피했었다.

장 주석은 김 주석에게 한.중 상호 무역대표부 설치 문제는 더 이상 지연시키기 어렵다고 솔직하게 털어놓고 국제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중국은 북한의 자주·평화통일 정책을 지지하는 입장을 바꾸거나 북한 인민들에게 미안한 일을 결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중국은 북한측의 우려를 감안, 융통성을 두면서 점진적으로 대(對)한국 정책을 조정했으며, 6개월 후 중국을 방문한 김 주석은 중국측에 “만약 중국이 정말로 남조선과 무역대표부를 설립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충분히 이해하겠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실록에는 한·중수교 후 3년이 지난 1995년 11월13-16일에 진행된 장 주석의 한국 방문 부분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양국 관계 및 한반도 정세, 일본의 군국주의 세력 재기(再起) 움직임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는 정도만 기록돼 있고 새롭거나 주목할 만한 내용은 들어 있지 않다./베이징=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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