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美 벼랑끝 대치…美 강경드라이브 탄력받을 듯
한미, 대북정책 놓고 의견조율 관건


“이제 미사일 사태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북한이 끝내 ’6자회담 거부’ 입장을 고수하고 북한을 제외한 ’장관급 10자회동’이 28일 오후 쿠알라룸푸르에서 개최되는 과정을 지켜본 정부 당국자는 향후 사태의 추이와 한반도 정세에 대해 이렇게 요약했다.

◇정교하게 연출된 외교 이벤트 = 주목되는 것은 미국이 이번 말레이시아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정교하게 연출된 외교 이벤트로 일찍부터 준비해왔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북한이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 그 배경으로 깔렸다.

워싱턴에서 스튜어트 레비 재무차관이 방코델타아시아(BDA) 조사 건을 공개적으로 설명하고 북한에 대해 ’추가적인 금융제재’를 가하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는 상황에서도 미 정부는 북핵 6자회담 당사국들이 모이는 ARF를 ’협상 모멘텀’을 살리는 계기로 삼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미국은 ARF에 참석하기 앞서 6자회담 참여국들을 상대로 일일이 ’장관급 6자회동’ 참가 의사를 타진했다. 북한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북한이 참가한다면..”이라는 전제를 달며 ’참가 의사’를 전해왔다.

일단 ’북한 대 나머지 5개국’으로 전선을 형성시킨 미국은 짐짓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중국이 ’북한이 소외된 5자회담에 참석할 수 없다’는 의견을 공식화한데 대한 대안의 성격도 있지만 미국은 아예 ARF라는 외교공간의 의미를 살릴 수 있는 묘안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6자회담 참가 5개국에 호주와 캐나다, 말레이시아를 포함시킨 ’8자회동’이 그것이다.

북핵 문제의 당사자라 할 수 있는 6자회담 참가국에 ARF 주도 국가들이 두루두루 참가하는 형식이 될 경우 ARF 이후 북한을 압박하는 명분으로는 더욱 효과적이라는 판단도 했을 법하다.

마지막 순간에 인도네시아와 뉴질랜드까지 중국이 가세시킴으로써 ’10자 회동’으로 귀결됐다.

대북 압박을 위한 국제적 명분을 축적하려했다면 오히려 효과가 커진 셈이다.

미국은 유엔 안보리 결의 채택 이후 다시한번 ’국제사회’라는 우군을 동원해 ’북한=문제아’라는 인식 확산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은 위조지폐 제조.유통과 마약밀매, 인권문제 등 동원할 수있는 모든 카드를 제시하면서 북한을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유엔 결의안에 의거해 미사일 관련 물자와 기술을 통제하기 위해 북한 ’의심선박’을 나포하는 등 확산방지구상(PSI)를 실천하려 하고, 북한이 이를 ’주권침해’라고 주장하며 물리적으로 맞설 경우 한반도 정세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위기국면으로 돌입할 가능성이 있다.

이번 회의에서 “미국의 금융제재 해제없이 6자(회담) 복귀는 없다”는 기존입장을 다시 고수한 북한은 ARF 이후에도 ’또다른 돌발 카드’를 꺼내들며 벼랑끝 전술을 구사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는 핵실험이나 ARF를 비롯한 각종 국제기구의 탈퇴 등 깜짝쇼에 해당되는 방안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접점은 없나= 강경대치를 선언한 북한과 미국이 극적으로 접점을 찾을 가능성은 현재로선 거의 없다는게 외교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정말 접점은 없는 것인가.

이와 관련,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 장관이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의 회동이나 ARF 각종 회의에서 말한 ’두갈래 접근’은 의미가 있어 보인다.

반 장관은 라이스 장관과의 회담에서 현 사태와 관련, ▲안보리 결의처럼 북한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동시에 ▲대화의 틀을 유지하고 6자회담 복귀를 위한 유연한 자세를 관련국들이 발휘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미사일 발사와 불법행동을 자행한 북한에 대해 제재를 추진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지만 제재라는 것이 제재에 그쳐서는 안되며 북한을 협상장에 나오도록 유도하는 수단이 돼야한다는 한국 정부의 기본방침이 깔려있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특히 북한에 대해 ’두번의 외면’을 받아 자존심이 상했을 법한 중국 역시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동북아 질서를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을 향한 국제사회의 강경 제재 움직임을 완화하려고 나설 가능성이 높다.

결국 북한에 영향력을 지닌 한국과 중국이 ’적절한 중재 역할’을 소화하고 북한이 이를 명분으로 잘 활용할 경우 접점은 어렵지만 찾을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워싱턴의 강경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이 “이번 기회에 북한의 버릇을 고쳐야 한다”며 한국과 중국 정부의 예상을 뛰어넘는 제재를 강행하려 하거나, 제재 움직임에 한국과 중국의 가담을 촉구할 경우 한미간, 미중간 외교적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미국 일각에서 ’미사일 개발 자금’으로의 전용 가능성 등을 우려하며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사업의 재조정을 한국측에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대북 협상에 정통한 정부 소식통은 “북한에 대한 인식에 있어 한미간 차이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 “하지만 방법론을 놓고 양국이 과열된 양상으로 갈등을 노정하고 일부 세력의 양국 갈등을 부추기는 활동이 지속될 경우 북한과 국제사회의 갈등 뿐 아니라 한미간 신경전도 협상 모멘텀 유지에 제약요건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쿠알라룸푸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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