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미사일 발사 이후 처음으로 6자회담 참여국의 고위 당국자가 모두 참석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 북측의 강경 입장만 재확인한 채 마무리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북한 미사일 발사 문제를 해결할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가 허물어지고 있는 셈으로, 남북관계도 더 강경해질 국제사회의 분위기와 맞물려 경색 국면이 심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사실 유엔의 대북 결의안 채택 이후 별다른 상황 반전이 없었다는 점에서 ARF에 대한 기대가 애초부터 높았던 것은 아니었다.

결의안 채택 직후 북한이 결의안을 거부하겠다고 밝혔고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대북 추가 제재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참석 여부가 불투명했던 백남순 북한 외무상이 참석하면서 일말의 기대감을 갖게 했지만 백 외무상은 “미사일 발사는 자위를 위한 통상적 군사훈련”이며 “제재 모자를 쓰고는 6자회담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해 실망감을 안겼다.

북한은 더 나아가 ARF에서 미사일 관련 공동성명을 채택하면 ARF에서 탈퇴할 수도 있다는 초강수를 꺼내드는 등 ’벼랑끝 전술’의 강도를 더했다.

이번 ARF가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기는 커녕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가 더욱 낮아지는 자리가 됐다는 점에서 ’한반도의 추가 긴장을 막고 대화로 문제를 풀자’는 우리 정부의 대북 기조는 상당히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당장 다음달 평양에서 열리는 8.15 통일대축전에 당국 대표단을 보내는 문제도 더욱 신중해질 수 밖에 없게 됐다.

강경해지는 국내 여론은 제쳐두고라도 북한의 강경 입장을 거듭 확인한 국제사회가 북한과 대화하려는 우리 정부의 의지를 100% 받아들이기 힘들지 않겠느냐는 분석 때문이다.

정부는 “아직까지 결정된 사항은 없다”는 공식입장을 내놓고 있지만 국내외 여론은 물론 북한의 대응을 면밀히 관찰하며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남측 당국이 방북하기 위해서는 행사 주최측인 북측의 초청이 선결돼야 한다.

북한이 개성공단 내에 있는 남북경협사무소에서 민간 인력은 남겨놓고 당국 인력만 철수시켰다는 점에 비춰볼 때 남측 당국을 초청하지 않을 공산도 적지 않다. 당국 인력을 철수함으로써 당국 관계는 적어도 당분간 단절할 것이란 의지를 비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8.15 통일대축전에서의 남북 당국 간 회담이 현재 예정된 사실상 유일한 북한과의 대화 기회라는 점에서 주목은 받고 있지만 설사 성사된다 해도 대세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지난 11~13일 열렸던 제19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처럼 북한은 쌀과 비료 지원을 요구하고 우리는 6자회담 복귀를 설득하는 상황이 재연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대화의 끈을 이어간다’는 상징성만 유지할 뿐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따라서 정부 안팎에서 장기전을 염두에 두는 분위기도 점차 감지되고 있다.

북한이 잇단 초강수를 두는 데는 군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있게 제기되면서 북한의 고집이 쉽게 꺾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식량난이 최고조에 달하는 8월 말이 되면 북한이 대화를 제의해 올 가능성이 있다는 낙관론을 펴지만 이 때가 한미연합군의 합동 군사훈련인 을지포커스렌즈 연습이 실시되는 시기와 겹친다는 점에서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한편에서는 집중호우로 남북에 모두 막대한 피해를 끼친 수해가 경색된 남북관계를 누그러뜨릴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북한이 적십자 채널이나 국제기구를 통해 도움을 요청하면 정부도 적극 검토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구호물품 지원으로 남북관계의 기본적인 신뢰가 어느 정도 회복된다면 북한이 중단을 선언한 이산가족 상봉도 재개될 여지가 있지 않겠느냐는 희망적인 전망도 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북한의 6자회담 복귀로 대변되는 미사일 발사의 ‘출구’와는 별개의 문제여서 당분간 남북관계는 상당한 파행이 불가피할 전망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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