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중국이 끝내 북한 설득에 실패하고 북한이 빠진 장관급 10자회동에 들어가면서 중국과 북한 사이에 관계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성급한 진단이 나오고 있다.

일부 외교 전문가들은 중국이 북한에 등을 돌린 것 아니냐는 극단론에서부터 북한 길들이기 수순을 밟아가고 있다는 평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중국은 그동안 6자회담 당사국 가운데 북한이 불참하는 5자회동에 반대해왔고 ARF에서도 6자회담 외무장관 회담 성사를 위해 여러모로 노력해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서서히 북한을 압박하는 행보를 보였다.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찬성했고 최근에는 중국 최대 외환은행인 중국은행이 마카오지점의 북한 계좌를 동결한 것으로 미국측이 확인했다.

선양(瀋陽) 주재 미국영사관에 보호중이던 탈북자 4명 가운데 3명의 미국행에 전례없이 동의한 것도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중국과의 관계균열 조짐으로 해석할 수 있는 사건이다. 중국이 북한 길들이기를 하고 있다는 분석은 이런 일련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중국은 여기서 더 나아가 10자회동을 제안하며 북한 압박을 주도한 것으로 보아 북한과의 관계 재정립에 들어간 것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ARF에서의 10자회동은 리자오싱(李肇星) 중국 외교부장이 내놓은 아이디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베이징(北京)의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이 자제 요청에도 불구하고 미사일을 시험발사했고 외교관리를 급히 보내 6자회담 복귀를 설득했는데도 듣지 않은 데서 중국이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것만큼은 사실일 것”이라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대북정책 기조가 흔들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았다.

리자오싱 부장이 백남순 북한 외무상을 설득하느라 10자회동에 30여분이나 늦게 도착한 것만 보더라도 중국이 여전히 북한에 깊은 배려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10자회동은 북한을 압박하기 위한 목적이라기 보다 오히려 꼬인 문제의 해법을 북한 쪽이 아닌 다른 당사국 쪽에서부터 풀어보려는 시도의 하나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중국은 그동안 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위해 6자회담이 유효한 틀이며, 6자회담의 회복에 도움이 된다면 어떤 형태의 양자 또는 다자간 접촉도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동북아 안보 구도로 시각을 넓혀서 보면 중국에 있어 북한은 쉽게 등을 돌리거나 버릴 수 있는 카드가 아니라는 점이 분명하다.

미국과 일본이 북한과 중국을 대칭점으로 놓고 안보협력을 확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북한에 등을 돌리고 미.일과 한편에 서기는 어렵다. 균형이 깨지면 더욱 불안정해지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이 중국을 지렛대로 북한을 움직이려 하지만 중국 역시 북한을 작용점으로 해 미.일을 견제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지속적인 고도성장을 유지하기 위해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이 필수적이고 선진국 도약의 첫 계기로 삼고 있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0년 상하이 국제박람회 등을 앞두고 있는 중국이 극단적인 변화를 모색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따라서 북한을 벼랑 끝으로 몰고감으로써 동북아의 긴장을 심화시키기 보다는 지속적인 인내로 북한을 설득해 안정을 꾀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게 북.중 관계를 보는 전문가들의 우세한 관측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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