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北 지원 유보’ 해놓고 쌀 지원 검토

정부는 북한의 수해 피해가 예상보다 큰 것으로 보고 국제기구나 대한적십자사가 대북 긴급 지원을 정식 요청해올 경우 수용을 검토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27일 “북한이 국제사회에 긴급 구호를 요청하거나 대한적십자사가 북한에 대한 긴급 지원을 요청하면 검토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국제기구를 통해 북한에 식량을 지원할 경우, 지난 5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대북 쌀·비료 지원을 유보한 정부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스스로 이를 번복하는 셈이다. 그러나 당국자들은 공식적으로는 “안보정책조정회의 등에서 그 문제에 대해 검토한 적이 없다”며 “남쪽도 홍수 피해가 커서 논의하기는 적절한 시점도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북한에 매년 30만~50만t의 쌀을 차관 형식으로 지원하면서 세계식량계획(WFP) 등 국제기구를 통해 옥수수 10만t 안팎을 함께 지원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지난 23일 기자들과 만나 원래 식량 5만t을 국제기구를 통해 북한에 지원할 방침이었음을 밝혔다. 그는 “쌀 차관으로 45만t을 제공하고 나머지 5만t은 국제기구를 통해 주려고 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됐다”고 말했다.

통일부는 이날 이례적으로 북한의 호우 피해 상황을 집계한 보도자료를 냈다. 이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조선중앙통신 등을 통해 이번 집중호우로 평남에서 수백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국제적십자연맹과 WFP 등은 북한에 6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식량 손실도 약 10만t에 이른다며 국제사회에 지원을 호소했다.

한편 국내 대북 인권단체인 ‘좋은 벗들’은 북한의 피해가 국제기구들이 추정한 것보다 10배 이상이라며 “3000여 명이 실종됐거나 사망했다는 소식들이 들려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한완상(韓完相)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26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남측이 쌀·비료 추가지원을 중단키로 한 것을 비판했다.

한 총재는 “남측이 유엔 결의안이 나오기도 전에 쌀·비료 추가 지원 중단을 너무 급하게 얘기해 버렸다”고 말했다. 정부가 대북 지원에 대한 입장을 성급하게 전해 결과적으로 남북 간 인도주의적 교류·협력의 길을 차단하고 대북 인도주의 사업을 희생시켰다는 것이 한 총재의 주장이다./김민철기자 mc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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