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전과 같은 일이 이번에도 일어날 것인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위기국면이 고조된 이후 처음으로 마련된 다자간 외교무대인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이 회의의 최대 관심사로 부각된 북미 외교장관 회동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4년전 사례를 잘 살펴보라”고 강조했다.

콜린 파월 당시 미국 국무장관의 ’돌발행동’으로 이뤄진 백남순 북한 외무상과의 비공식 접촉을 상기한 것이다.

그해 7월31일 ARF 회의에 참석한 파월 장관은 회의장 한 켠으로 몸을 돌린다.

각국 대표단이 대거 모인 회의장에서 갑작스럽게 백남순 외무상에게 다가간 것이다.

두 사람은 15분간 예정에 없던 ’대화’를 나눈다.

당시를 기억하는 정부 소식통은 “파월 장관은 부시 대통령의 재가도 없이 일단 일을 저질렀던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풀 어사이드(pull aside.얘기하기 위해 한곳으로 불러냄) 회동’으로 불리는 15분에 걸린 이날 만남은 북미 관계에 중대한 역할을 했던 ‘사건’이었음이 나중에 판명된다.

그해 1월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북한을 이란과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북한이 강력 반발했고 그렇지 않아도 냉각되던 양국 관계는 치명상을 입고 꽁꽁 얼어붙었다.

그러나 파월 장관은 ’부시의 허락도 없이’ 감행한 백 외무상과의 대면에서 “부시 대통령의 대북 정책에 대한 기본입장을 전달했으며 미국이 앞으로 있을 북한과의 대화에서 핵무기 확산, 제네바 합의 이행, 북한의 재래식 무기 등을 의제로 제시할 방침을 천명했다”고 리처드 바우처 당시 국무부 대변인이 밝혔다.

바우처 대변인은 이어 향후 북-미 외무장관 회담 개최 혹은 파월 국무장관의 방북 문제는 북한의 반응에 따라 좌우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북미 관계는 다소간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고 결국 이듬해 4월 중국이 가세하긴 했지만 ’북·미·중 3자회담’이 베이징(北京)에서 성사됐다.

백남순-파월은 2년후 인도네시아 ARF에서 다시 만나 또다시 교착국면에 빠진 북미 관계의 돌파구를 여는 계기를 마련하는 등 독특한 인연을 과시했다.

현지 외교소식통들이 27일 오후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하는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 백 외무상의 동선(動線)을 주목하는 이유이다./쿠알라룸푸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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