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마을 뒤로 절벽이 병풍처럼 늘어섰다.

절벽 위 소나무 숲에 매 한 마리가 산다.

까마득히 높이 날며 어느 날짐승보다 빠르다.

그 앞에서는 제아무리 덩치 큰 짐승도 몸을 움츠렸고 화살이며 창같은 쇠붙이도 녹슬어버렸다.

마을 사람들은 이 영험한 매를 장수매라고 불렀다.

1세대 그림책 작가 류재수씨가 3년여의 작업 끝에 신작 ’돌이와 장수매(여성신문사 나미북스 펴냄)’를 발표했다.

류씨가 1988년 내놓은 ’백두산 이야기’는 한국 현대 그림책의 효시로 불리는 작품. 2002년 발표한 ’노란 우산’은 그 해 뉴욕타임스가 ’올해의 우수그림책’으로 선정했다.

’백두산 이야기’가 성산(聖山) 백두산의 탄생과 민족의 시원(始原)을 이야기했다면 ’돌이와 장수매’는 분단에서 비롯된 이산가족의 아픔을 담았다.

고기잡이를 떠난 돌이 아버지의 배는 심한 비바람을 만나 헤매던 중 먼 나라 해적 떼를 만나 끌려간다.

민족의 분단이 외세에 의한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어느 날 돌이는 아버지와 함께 고기 잡는 꿈을 꾼다.

배 안이 고기로 가득 찰 때쯤 먹구름이 몰려오면서 사방이 캄캄해졌다.

돌이가 아버지 품에서 떨고 있을 때 어디선가 ’탁, 탁’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장수매가 어둠을 쪼아내는 소리다.

작가는 “돌이 가족 이야기는 작게는 개인의 아픔이지만 크게 보면 분단이라는 역사의 비극을 의미한다”며 “장수매는 외세에 고통을 겪으면서도 끈질기게 이어온 민족의 혼과 희망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장수매는 황석영과 백기완의 소설 ’장산곶매’에서 차용했다.

그러나 임금의 독화살과 다른 매에게 죽는 장산곶매와 달리 장수매는 바다 건너 온 수리떼를 물리치고 매서운 정기로 원님의 화살을 못쓰게 만든다.

슬픔의 밑바닥에서도 희망은 스러지지 않는다는 작가의 의도가 담긴 변형이다.

이번 작품의 일러스트레이션은 색채의 사용을 절제하고 명암의 대비와 톤의 미묘한 변화에 주안점을 뒀다.

그 결과 중후하고 서정적인 화면이 완성됐다.

거대한 스케일과 역동성으로 영화같은 장엄함을 보여준 ’백두산 이야기’와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작가는 “’돌이와 장수매’는 분단이라는 구체적인 현실을 반영한 작품이다.

돌이 아버지가 돌아오는 장면을 그리고 싶었지만 현실이 50년 동안 변하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었다”며 “언젠가는 꼭 돌이 가족의 다음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류씨는 민족의 정체성을 담은 ’백두산 이야기’와 ’돌이와 장수매’에 이어 조상의 어진 마음을 담은 ’금강산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

류씨의 민족 역사 그림책은 4부작으로 완간될 예정이다.

60쪽. 1만8천원./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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