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한 군부의 의견에 주로 귀를 기울이면서 결과적으로 정치·외교뿐만 아니라 경제까지 엉망이 되고 있다고 북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 정치·외교 오판

철도 시험운행 무산, 무더기 미사일 발사, 2002년 서해교전 등은 군부의 결정을 김 위원장이 그대로 따른 결과다. 이것만이 아니다. 최근 남북 합의에는 ‘군사적 보장조치가 취해지는 데 따라’라는 문구가 많아졌다.

6월 남북경제협력추진위에서의 한강 하구 공동개발이 대표적이다. 임진강 수해방지 협의 때도 마찬가지였다.
작년 6월 김 위원장은 정동영 당시 통일부장관의 제안에 따라 서울~평양간 ‘ㄷ’자 서해 직항로를 직선으로 바꾸는 데 긍정적으로 답변했는데 이 또한 군부 반대로 합의하지 못했다. 직선 직항로는 비행 시간을 50분 줄일 수 있다.

김 위원장은 2002년 4월 방북한 임동원 대통령 특사가 조속한 철도 연결을 요청하자 이명수 군 작전국장을 불러 지시를 하면서도 “군부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각이 시장경제 접목의 일환으로 개인 투자에 의한 주택 건설을 허용하려는 것을 군부가 “사회주의를 말아먹는 방식”이라며 반발한 것 또한 비슷한 예다.

이처럼 완고하고 정세에 어두운 군부가 남북관계와 외교 문제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면서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고립이 심화되고 주민들의 삶은 갈수록 고달파지고 있다.

◆ 경제도 왜곡

북한의 경제는 당, 군, 인민, 암시장 부문으로 나뉘어 움직인다. 당 경제는 김정일 위원장 비자금, 대남 자금, 핵·미사일 등 전략자금을 마련하는 부문이고, 군 경제는 제2경제 산하 군수공장(154개)과 군부가 사업을 맡아 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경제난 이후 군은 직접 돈벌이에 나서 돈 되는 노른자위 사업을 모두 차지했다. 경공업성 간부출신 김태산씨는 북한 최대 금광(평남 회창, 황북 연산)과 주요 어장, 산림자원, 석탄 등에다 최근에는 전력까지 군부 손에 넘어갔다고 말했다.

김씨는 경공업성에서 무역관련 제의서를 김 위원장에 올려도 군부가 돈이 된다 싶으면 김 위원장에게 추가 제의서를 올려 결국 사업이 군부로 넘어가고 만다고 말했다.

군에 권력과 부가 집중되면서 부작용이 심각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지역의 각종 이권을 틀어쥔 군단장들은 거의 100만달러 이상을 소유한 준재벌급이고, 그들의 자제들도 부를 축적하고 있다.

한 고위 탈북자는 이을설(인민군 원수)의 아들 이종기가 군 외화벌이를 하면서 한 번에 120만달러를 벌어 ‘거간왕’이라는 별칭까지 얻었고 그의 집은 대형 수족관까지 갖춘 120평 규모의 단독주택이라고 말했다.

노동당 조직지도부 군사담당 이용철 제1부부장의 아들 역시 중국과의 교역을 독점해 수백만달러의 재물을 모았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 군부도 김 위원장에 이용당해

이런 군부도 김 위원장에 이용당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있다. 군부도 김 위원장이 시키는 대로 하는 배우라는 반론이다. 통일연구원 정영태 연구위원은 “북한 군부를 조직적인 집합체로 파악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북한이 협상에서 군부 핑계를 대는 것은 ‘군부 잘못 건드리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고 위협하는 일종의 협상 전략”이라고 말했다.
/ 김민철기자 mckim@chosun.com
/강철환기자 nkc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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