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오는 28일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계기로 6자회담 참가국 외교장관 회의가 성사될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남북한이 모두 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는 ARF 자체도 북한 미사일 발사 후속 국면에서 중요한 외교무대로 주목받고 있지만 북한을 포함한 6자회담 참가국 외교장관들이 모두 이 포럼에 참석할 것으로 일단 예상됨에 따라 미사일.핵 등을 비롯한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6자 외교장관 회의의 성사 여부가 더 큰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다.

북한 미사일 발사의 후속 대응 과정에서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대북 강경 기조와 우리나라와 중국 중심의 ‘신중론’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6자회의의 성사 여부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이 경직된 자세로 6자 외교장관 회의에 불참할 경우 대북 압박기조가 더욱 힘을 받을 가능성이 크고 북한이 참석할 경우 제재국면을 대화국면으로 돌리려는 노력들이 탄력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백남순 외무상 참석할까 = 우선은 북한이 예정대로 ARF에 백남순 외무상을 참석시킬지가 1차 변수로 거론되고 있다. 북한은 2000년 7월 ARF에 가입한 이후 2001~2005년 잇달아 백남순 외상 또는 허종 대사를 수석으로 하는 대표단을 파견했다.

2004~2005년에는 ARF를 계기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백 외무상 간에 남북 외교장관 회담이 열리기도 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7월5일) 전만 해도 북한이 ARF에 참가하겠다는 뜻을 주최국인 말레이시아에 통보한 것으로 확인됐지만 15일 유엔 안보리의 대북 결의문이 채택되는 등 일련의 상황 변화가 있은 뒤 북한의 참가 여부는 재확인되지 않고 있다.

정부 소식통들은 북한이 안보리 결의문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는 등 국제사회에 등을 돌릴 듯한 태세를 보이긴 했지만 북한 입장에서 일부 동남아 국가들과의 우호관계 마저 무시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개막 5일전인 23일 현재까지 불참의사가 전해지지 않고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할때 참가 가능성이 높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특히 백 외무상이 이번 출장을 계기로 동남아 일부 국가에서 신병치료를 받을 계획까지 세워둔 것으로 알려진 것도 그의 ARF 참가 가능성에 무게를 두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백 외무상의 ARF 참석과 그의 6자 외교장관 회의 참가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ARF에는 참가하더라도 비공식 6자회담의 모양을 띤 6자 외교장관 회의에는 나서지 않을 것으로 보는 전망이 우세한 실정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미국이 대화의 무대로 제안한 6자 외교장관 회의에 대해 북한이 매력적으로 느낄 만한 요소가 없지 않지만 미사일 발사 이후 북의 태도로 미뤄볼 때 금융제재를 풀기 전에는 6자회담에 돌아오지 않겠다는 기존의 교조적 입장을 6자 외교장관 회의에 대해서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정부는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을 비롯한 각국 최고위 외교 당국자들이 한데 모이는 이번 회의 기간 의외의 ‘다이내미즘’(활력)이 작용할 수 있는 만큼 28일 ARF 폐막 전에는 6자 외교장관 회의의 성사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성사될 경우를 대비한 준비도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우리 측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인 천영우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도 말레이시아 출장을 계획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北, 참가시 대화기조에 ‘탄력’.불참시 압박강화 = 북한이 6자 외교장관 회의에 참가하느냐 마느냐는 현재 미국.일본 중심의 대북 강경기조가 대세로 굳어질지, 아니면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의 가능성을 조금이나마 높이게 될지를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19일(이하 현지시간) 미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중국의 대북정책 전환을 촉구하는 등 강경 드라이브를 걸면서도 21일 워싱턴 내셔널프레스빌딩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는 북한이 6자회담 프로세스에 들어올 경우 “북한이 감내할 수 있는 만큼 많은” 양자회담을 가질 수 있다고 언급했다.

즉 미국은 6자회담이라는 유일한 출구를 북한에 제시하면서 그 출구로 빠져 나올때까지 대북 압박을 그만두지 않을 듯한 태세다.

그런 미국이 미사일 발사 및 안보리 결의문 채택 이후 처음으로 내 놓은 외교적 제안이 이번 6자 외교장관 회의인 만큼 북한의 참가 여부에 따라 향후 상황 전개 방향이 달라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북한이 6자 외교장관 회의에 참가한다면 비록 형태는 6자 회동이지만 한.중.러.일이 배석한 가운데 미국과 북한이 6자회담 재개에 대한 쌍방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상 양자대화의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6자 외교장관 회의에서 큰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더라도 올 1월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의 중재로 열린 힐 차관보와 김계관 외무성 부상간 대화 이후 북미간 대화가 단절됐고 그 사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상황이 악화됐음을 감안할때 북미가 상호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라도 확인한다면 현 미사일 국면을 ‘압박’에서 ‘대화’ 기조로 바꾸는 데 큰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더 나아가 북한의 6자 외교장관 회의 참가를 계기로 2004년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때 처럼 짧게 나마 현장에서 북-미 외교장관 회담이 열릴 수 있다면 이 같은 기대효과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이 불참한다면 미.일을 중심으로한 대북 압박은 더욱 강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며 특히 엉뚱하게 6자회담 참가국간 분열 양상으로 사태가 꼬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전망이다.

북한을 제외한 채 5자회의를 개최하느냐를 놓고 미국과 중국간에 알력이 생길 수 있고 그 경우 미국과 함께 5회담을 대안으로 모색했던 우리 정부의 입장도 난처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미 양국은 북한이 6자 외교장관 회의에 불참할 경우 5자회의를 대안으로 제시한 가운데 중국의 리자오싱 외교부장은 21일 일본 외무심의관을 만난 자리에서, ARF에서는 6자회담의 모든 당사국 외무장관들이 모여야 한다고 강조해 5자회담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낸 바 있다.

아울러 5자회의에 대한 일본과 러시아의 입장은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지만 각각 미국과 중국에 보조를 맞출 가능성이 높은 만큼 한.미.일-중.러간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 경우 21일 노무현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간 통화에서 중국과 6자회담 재개를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던 우리 정부의 입장이 난처해 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아울러 5자 회의가 열리든, 중국의 반대 속에 한.미.일 3자회의가 열리든 회의에 참가하지 않는 북한 입장에서는 또 하나의 압박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은 만큼 5자 내지 3자 회의가 6자회담 재개에 긍정적인 작용을 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만만치 않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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