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완(李炳浣) 청와대 비서실장이 21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국제사회를 향한 정치적 시위”라고 규정하면서 대북 선제공격을 포함한 일본의 대북 강경론과 보다 강도높은 대북 제재 동참을 주문하는 국내 보수언론의 보도태도를 싸잡아서 강도높게 비판했다.

이 실장은 대북 제재 강화의 국제여론을 주도하는 일본의 태도를 “참으로 고약하다” “’김정일원장이 고맙다’고 한 일본 각료의 말 뜻이 무언인지 드러났다”는 표현을 사용하며 “군사대국주의, 팽창주의 성향”이라고 신랄하게 꼬집었다.

청와대 고위당국자의 공개적인 연설로는 대일(對日) 비판의 수위가 이례적으로 높았다는 평가들이다.

또 보수 언론의 보도에 대해서도 “한국신문인지, 일본신문인지 헷갈린다” “일본이든 한국이든 극우는 극우끼리 통한다”고 비난했다.

이 실장의 발언은 이날 대한상공회의소가 제주시 서귀포호텔에서 개최한 ’제31회 최고경영자대회’ 특강에서 이뤄졌다.

이 실장의 강연 전문은 이날 오후 청와대 브리핑에 게재됐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유 = 이 실장은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이유가 미국이나 일본, 한국과 전쟁을 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지금 이 시대에 미국의 공격이 없는데도 미국을 상대로 먼저 전쟁을 일으킬 나라는 없다”며 “더구나 미국과 전쟁을 해서 이길 수 있다고 믿는 나라는 지구상에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으며, 그것은 만화속의 상상일뿐”이라고 말했다.

일본에 대해서는 “세계 2위의 경제강국, 세계 2위의 국방비를 쓰는 나라”라며 북한이 일본과 전쟁할 수도 있다는 능력을 보이려 미사일을 발사했을 것이라는 가설을 단호히 부정했다.

또 “북한이 한국과 전쟁을 한다면 북한 정권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 실장은 “결국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북한 내부적 필요성과 미국이나 국제사회를 향한 정치적 시위를 목적으로 감행한 것이라는 우리의 판단은 맞다”며 “우리 국민들 역시 88%가 국제사회를 향한 정치적 시위라고 본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대응 전략 = 이같은 상황 판단을 근거로 이 실장은 “우리 정부가 차분하게 대응하는 것이 옳았다”고 말했다.

“주한미군도 차분한 평시상태를 유지했고, 북한군도 마찬가지였다. 국내외 투자자들도 과거와 달리 흔들리지 않았다”며 “북한의 의도와 목적을 알고서도 부산을 떨고, 야단법석을 떤다면 국민들이 불안하고 한반도 긴장이 높아지고, 시장이 출렁거리면 결국 북한의 의도에 말리는 셈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 실장은 대북 선제공격론, 군사적 무력조치가 포함된 유엔결의안 추진 등 일본의 태도를 거론하며 “일본과 맞장구치며 동참하는 것은 한반도의 평화를 저당잡히는 일”이라며 “한반도에서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지키는 주인은 어떤 경우든 한국이어야 한다”고 한반도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상황관리전략을 역설했다.

그러면서 “그길이 비록 험난할지라도 평화는 우리가 지켜가야 한다”며 북한의 조속한 6자회담 복귀를 거듭 촉구했다.

◇일본 강경 대응 전략 비판 = 이 실장은 “참으로 고약한 것은 일본정부의 태도”라고 비난하며 북한 미사일 발사당일 새벽 각료회의 소집, 대북 선제공격론 주장, 군사적 무력조치가 포함된 유엔헌장 7장을 근거로 한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한 제출 등 순차적으로 진행된 일본 대응 방식에 대해 “정부가 앞장서서 상황을 긴박하게 몰아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미국의 첫 공식 반응과도 대비시켰다.

이 실장은 일본의 대북 선제공격론에 대해 “단순히 북한과 일본의 문제가 아니다”고 전제, “일본이 먼저 한반도의 북쪽을 선제공격한다면 그 경우는 한반도 전체가 전쟁터가 된다는 것을 뜻한다”며 “한반도의 전쟁이냐, 평화냐를 가르는 실로 중차대한 발언을 대한민국을 의식치 않고 한다는 것은 이번 북한 미사일 발사를 보는 일본의 의도와 태도가 어떠한지 그 속내를 드러낸 것이며, 바로 군사대국주의, 팽창주의 성향”이라고 역설했다.

이 실장은 일본의 과거 한반도 침략사를 열거함과 동시에 일본이 북한의 메구미 납치사건 해결에 집요한 태도를 보이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그런 일본이 과연 일제시대의 메구미라 할 수 있는 수많은 정신대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태도를 취해왔느냐”고 따져묻기도 했다.

◇보수 언론 비판 = 이 실장은 북한 미사일 발사 이후 보수언론의 보도 방향에 대해 “일부 극우적 언론”이라고 규정한뒤 “이들 논조를 보면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속담이 생각난다”며 “일본보다는 참여정부가 더 싫다는 솔직한 의사표시로도 보인다”고 꼬집었다.

이 실장은 “북한 미사일 문제의 본질과 일본이 보여주는 일련의 과정을 모를리 없는 이 신문들은 어느 날 알리바이용으로 일본을 한번 슬쩍 비판하고선, 국제 외교전선에 몰입하여 고뇌하고 있는 정부만 매일같이 때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한국정부가 외톨이가 된다며 일본이 주도하는 대북 강경론에 동참할 것을 부추기고 있다”며 지적한뒤 “북한이 좋아서 우리 정부가 신중한 것이 아니라, 한국마저 강경 드라이브를 걸었을 때 돌아올 결과가 심대하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안보를 정치적, 정략적으로, 대중적으로 이용하는 순간, 안보는 더욱 불안해졌던 것이 지난 시대의 학습효과였고, 북한의 속셈에 놀아난 결과를 가져왔었다”며 극우·극좌세력들의 주의·주장을 초월한 합리적이고 차분한 대응 필요성을 거듭 역설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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