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2월 일본 가고시마현 남서해역에 출연해 일본 해상보안청의 순시선과 총격전을 벌인 끝에 자폭, 침몰한 북한의 괴 선박이 한일월드컵 테러를 위한 공작선이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당시 일본 당국과 언론은 괴 선박의 침투목적을 북한산 각성제의 밀수출에 무게를 두었다.

월간조선 8월호에 따르면 2004년에 망명한 탈북자 정성준(60·가명)씨는 “문제의 공작선에는 정예공작원(테러요원) 22명이 타고 있었으며, 그들은 일본에 잠입해 일본 국내에서 5개월간 테러훈련(실습)을 마친 후, 월드컵대회 기간 한국과 일본에 침투해 테러를 실행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정씨는 2005년 5월 평양에서 북한 조선노동당 작전부 산하 대남 연락소의 현직 고위 간부로부터 이 말을 들었다고 기사는 전했다.

월간조선에 따르면 이 고위 간부는 정씨에게 “공작선은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의 야음을 틈타 가고시마현 해안을 통해 일본에 침투하려 했다.

2002년 월드컵이 열리는 한 달 동안 한·일 간에 비자 없이 자유롭게 왕래가 가능해 그때를 노렸다”고 했다.

또한 북한에서 33년 이상 정보 관련 업무에 종사했던 정씨는 이 공작선 파견에 관한 이야기를 복수의 공작원 유가족으로부터 들었다고 한다.

공작원 이동철(본명)의 미망인에 따르면, 남편이 전투수행에 나가면서(공작선을 타러 나가면서) “세계적인 공로를 세우고 돌아올 거야. 걱정하지 마!”라고 했다고 기사는 전했다.

미망인에 따르면 장례식에는 공작선에 타고 있던 28명의 유가족이 참석했고, 전원에게 ‘영웅칭호’가 주어졌으며 가족에게는 ‘영웅칭호 메달’이 수여되었다고 한다.

또 기사는 “정씨에 의하면 북한 최고 지도부는 2001년 12월 공작선 침몰사건이 일어난 직후 각 연락소의 소장 등을 평양에 집합시켜 약 3개월에 걸쳐 ‘사상투쟁회의’를 열게 했다”며 “김정일의 회의 지도 아래 ‘각 연락소는 행정업무 등 각자 부문별로 잘못된 것을 토로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전했다.

또한 “김정일은 이 회의에서 직접 강연을 했다고 한다”며 “이는 그의 직접 지시로 ‘테러 공작선’이 파견됐음을 의미한다”고 보도했다.

기사는 “김정일은 테러작전 실패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며 “그들은 월드컵 축구대회의 테러 작전이 실패로 끝나자 2002년 6월 월드컵이 열리고 있는 동안에 서해에서 한국 해군에 도발을 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사는 “북한 공작선과의 총격전을 벌인 일본 해양보안청이 사건 발생 약 1년 3개월 후에 발표한 최종 수사결과에서 공작선이 북한산 각성제 등을 운반했다고 명시한 증거물은 제시되지 않았다”며 “단지 ‘증거물로 생각되는 물건의 투기상황’이라는 제목으로 희미한 사진 2장이 첨부되어 있었다”고 전했다.

기사는 “공작선이 해상보안청 순시선의 추격을 받고 도주하면서 버린 것이 만약 각성제였다면, 본래 목적은 ‘월드컵 테러’지만 ‘각성제의 밀수출’은 부차적인 것”이라고 보도했다.

기사는 “그들의 목적이 월드컵 테러에 있었고, 5개월 동안 일본내에서 테러 예행 연습을 하려 했다면, 그 기간 동안 공작원들의 활동 경비가 필요했을 것이고, 이를 마련하기 위해 공작선에 각성제 등을 함께 싣고 가서 밀매하려 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전했다./조선닷컴 internetnews@chosun.com

※ 기사 전문은 시중에서 발매 중인 월간조선 8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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