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차이는 당연..조율이 관건”
“북한압박 실제 효과는 韓中에 달려”


“각국이 처한 입장에 따라 의견차이는 당연히 있다.”

북한 미사일 발사와 유엔 안보리 결의 채택으로 이어지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20일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한미일 3국간 이견 노출 지적에 대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강조했다.

오히려 “3국의 입장이 하나가 되는게 이상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문제는 그러한 입장차이를 어떻게 조율하고 ’통일된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느냐인데 현재 이를 위해 외교 채널이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입장차이의 배경= 당연히 미사일을 발사한 북한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제재를 가하느냐가 핵심 현안이다.

미국과 일본은 유엔 안보리 결의문까지 도출된 상황인 만큼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는’ 북한을 향해 단계별로 강도를 높여 제재를 가하자는 입장이다.

특히 북한에 대한 강경 제재 방침을 정한 미국 정부는 최근 워싱턴을 방문한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6자회담 수석대표)에게 미국이 생각하는 제재조치의 내용을 상세하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관계자는 “미국의 추가 제제를 언급하면서 흔히 16-18일부터 서울을 찾은 스튜어트 레비 미 재무부 차관의 동선(動線)을 말하는데 이는 맥을 제대로 집은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레비 차관은 관직을 맡기 전 이른바 ’화이트 컬러’ 범죄를 담당했던 전문가다.

오히려 “진짜 중요한 협의 공간은 워싱턴이었으며 천 본부장이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를 포함한 미 정부 고위인사들과 만났을 때 미국 정부의 입장이 상세히 전달됐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미국 정부는 이미 지난달 외교채널을 통해 한국 정부측에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과거 클린턴 정부 시절 해제했던 대북 경제제재를 복원하겠다는 입장을 전한 바 있다. 당시 일부 언론에서 이를 전하기도 했다. 천 본부장은 이런 미국 입장을 다시한번 전달받은 것으로 보인다.

미사일 발사 이전부터 대북 제재에 적극적이었던 일본 정부도 유엔 안보리 결의까지 마련된 지금, 더욱 열을 올리고 있다.
일본은 개정 외환법에 근거해 미사일 관련품의 수출금지나 송금 정지, 자산동결 등을 검토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추가적인 대북 금융제재를 이르면 다음달초 발동한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이를 위해 미사일 개발 혐의가 있는 북한 관련 기업 및 개인의 ’블랙리스트’를 넘겨받아 준비작업에 착수했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은 미국과 공동보조를 취하는 모습을 과시하면서 한국측을 압박하려는 의도도 감추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여전히 ’대화를 통한 해결’을 강조하며 신중한 대응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중단을 천명하며 또 다른 악재를 두었지만 정부의 신중한 자세를 근본적으로 흔들지는 못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19일 청와대에서 안보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면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해치고 군비경쟁을 촉발하는 잘못된 행동”이라고 못박으면서도 “과도하게 대응해 불필요한 긴장과 대결 국면을 조성하는 일각의 움직임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한반도 문제의 제1차적 당사자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인식한다면 대통령 발언의 의미를 알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인 대포동 미사일이 부각되면서 미국 등이 ’안보위협’ 등을 운운하고 일본이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가장 무서운 위협은 휴전선을 따라 배치된 재래식 무기가 아니고 무엇이냐”고 말하는 정부 당국자들이 적지 않다.

미국과 일본은 북한을 코너에 밀어붙일 수록 자국의 위상에 도움이 되겠지만 한국의 안보상황은 그렇게 간단하게 입장을 정리할 수 없다는 곤혹스러움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미일 제재 효과있을까 = 북한을 추가로 제재하겠다고 나선 미국과 일본의 제스처가 거둘 수 있는 효과에 대해 정부 당국자들은 고개를 가로 젓는다.

2000년 6월 당시 클린턴 행정부는 대적성국교역법과 수출관리법을 고쳐 대북 제재를 완화했다.

하지만 3천200만달러에 달하는 미국내 북한 자산은 테러지원을 이유로 동결됐고 이중용도로 사용 가능한 상품 및 기술 수출, 국제 금융기관의 대북 차관지원 등은 계속 통제됐다.

북한으로서는 당시에도 제재효과를 거의 받지 못한 상황이기에 부시 행정부가 이를 복원한다고 해도 크게 걱정할 부분이 아니라고 외교부 당국자들은 설명했다.

일본도 미사일 발사이후 대북 송금제한 조치 등을 취했지만 지금도 북한으로 들어가는 돈은 대부분 북한 방문자들이 북한 내 가족에게 현금으로 직접 전해주는 경우가 많다.

대북 지원의 경우에도 미국은 지난해 북한에 2만2천800t(750만달러 상당)의 식량을 원조한 것이 전부였다. 이런 것을 중단한다고 얼마나 효과가 있을 지 의문이다.

실제로 북한이 두려워 하는 것은 따로 있다는게 외교가의 정설이다. 북한의 위조지폐 세탁창구로 지목돼 관련 계좌가 동결된 방코델타아시아(BDA)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는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서울의 외교 소식통은 “2천400만달러에 달하는 북한 자금(달러)이 동결되자 북한 수뇌부가 동요하는 기색이 포착됐다”면서 “소수 엘리트의 생존자금에 해당되는 해외 분산 북한 자금을 조이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대북 압박임을 미국은 물론 한국의 정보라인이 이미 알고 있다”고 말했다.

BDA 계좌 동결이후 북한의 해외 ‘달러수집책’들은 각국 은행들이 거래에 응하지 않자 현찰로 된 달러를 직접 북한으로 운송하고 있다고 정보 소식통들은 전한다.

이와 함께 북한이 두려워하는 제재수단은 미국과 일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한국과 중국에서 비롯되는 것임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해 북한의 대외 무역규모는 30억200만달러였고, 이 가운데 중국과의 교역액이 절반이 넘는 15억8천100만달러를 넘어섰고 한국과의 교역액은 10억5천만달러에 달해 1.2위 교역국 자리를 굳건히 유지했다. 중국과 한국이 북한 체제 유지의 근간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중국을 향해 미국과 일본이 ’제재에 동참하자’고 설득하지만 미국과 일본의 동아시아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하는 중국이 선뜻 응하지 않고 있다. 한국 역시 북한 문제의 직접 당사자라는 점에서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한국의 선택은= 북한을 압박하는 데 가장 큰 수단을 보유한 당사자는 역시 한국이다. 천영우 본부장이 워싱턴을 찾기 전부터 미국은 유엔 안보리 결의 채택을 계기로 한국도 보다 적극적으로 북한 제재에 동참하라고 촉구했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이 압박하는 포인트는 결국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부분”이라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민간 경협부분인 두 사업에 대한 한국 정부의 보조를 중단하라는 요구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은 국제사회가 나서서 ’불량국가’ 북한을 응징하는 마당에 북한과의 경제협력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게 미국측의 메시지”라고 말했다.

실제로 금강산 관광을 통해 북한 수뇌부가 확보한 ’달러’는 미국이 대북 금융제재를 가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생명줄’과도 같은 효과를 보고 있다는 분석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특정 업체의 운명이 걸린 사업을 중단할 수 없다”, “최악의 순간에도 남북 경협의 끈은 놓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오히려 과장된 흥분을 통해 한반도 정세를 불안으로 몰고 가려는 ‘일부 세력’이 문제라는 인식도 숨지지 않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확산방지구상(PSI)에 적극적으로 가담해달라는 미국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현재 취하고 있는 조치 이상의 조치를 취한다는 논의는 없었다”(송민순 안보정책실장)는 얘기는 현재 우리 정부의 입장을 대변한다.

하지만 북한의 태도 변화가 늦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과 일본이 보다 강력하게 한국을 밀어붙일 경우 한국의 고민은 커져갈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외교 담당 부처와 북한문제를 맡는 부처간에 미묘한 이견이 드러나는 모습이 노정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위기상황에서 일부 언론의 무분별한 비난도 문제지만 정부 내부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의견을 효율적으로 조율하지 못할 경우가 더 큰 문제”라면서 “종합적인 상황판단을 근거로 한 냉정한 대책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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