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이산가족 상봉 카드로 그동안 남측이 해오던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을 압박해 나섰다.

장재언 북한 조선적십자회 위원장은 19일 한완상 대한적십자사 총재에게 편지를 보내 제19차 장관급회담에서 남측이 거부한 쌀과 비료지원을 거론하며 “북남 사이에는 더 이상 흩어진 가족, 친척 상봉이라는 것도 있을 수 없게 됐고 인도주의 문제와 관련한 그 어떤 논의도 더는 할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장 위원장은 특히 8.15 광복절을 맞아 갖기로 했던 특별화상상봉과 면회소 건설사업도 중단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북한의 이번 조치는 장관급회담에서 남측이 인도적 대북지원을 거부하자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인도적 문제를 꺼내들어 맞불을 놓은 셈이다.

그동안 남북 간에는 북측이 이산가족 상봉을 허용하는 대신 남측에서 비료와 쌀을 지원한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국민의 정부 시절인 1998년 비료지원과 이산가족 상봉을 ’상호주의’로 묶어 논의를 해 왔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이 문제를 포괄적으로 담아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해 흩어진 가족, 친척 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나가기로 했다”고 합의했다.

이후 남북 양측은 대북지원과 이산가족 문제를 인도적 사안으로 포괄적으로 연계해 논의를 진행했고 문제를 풀어왔었다.

정부 당국자는 “이번 장관급회담에서 남측이 비료와 쌀의 대북지원을 거부하자 북측이 이산가족 상봉을 카드로 압박하려는 것 같다”며 “미사일 발사로 꼬인 현재의 정국이 풀리면 자연스럽게 풀려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석(李鍾奭) 통일부 장관은 지난 14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면 쌀과 비료 등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이 문제가 풀려나가면 자연스럽게 이산가족 상봉문제도 풀려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측의 이산가족 상봉 및 논의 중단선언이 남북관계 전반으로 퍼져나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대북결의안까지 통과돼 국제사회의 대북압박이 거세지고 있는데다 현재의 국면이 풀리지 않고는 남한으로부터 기대할 것도 없다는 점에서 남북관계 전반에 대한 재검토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번 유엔의 대북결의안에는 미사일과 관련한 물품.재료.제품.기술이 북한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제재안까지 담고 있어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사업 등 남북간의 경제협력사업까지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잠재돼 있다.

따라서 북한이 이같은 상황을 전반적으로 검토해 남북관계를 전반적으로 재조정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남북 양측은 KT와 정부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18일 개성공단 본단지 건설에 맞춰 통신공급 문제를 놓고 입장을 교환하는 자리를 가졌다는 점에서 북한이 남북관계의 기본틀을 흔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통일부 관계자는 “현재 개성공단사업이나 금강산 관광사업, 민간급 교류문제는 큰 문제 없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국제사회의 압박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북한이 남북관계를 전면적으로 닫으려 한다기 보다는 대북지원에서 운신의 폭이 좁은 남측을 압박하기 위해 강수를 두는 것 같다”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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