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8일 발표한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체결 이후 납북피해자 등의 구제·지원에 관한 법률’(납북자지원법) 입법예고안은 납북 피해자에 대한 구제와 보상을 위한 첫 걸음을 내디딘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뒤늦게 나마 남북 간 대결시대에 우리 국민이 겪은 아픔을 정부가 직접 치유하는 작업에 착수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북한에 의한 행위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북한에 피해구제를 요구하기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입법 배경에는 납북자의 송환이 장기간 이뤄지지 못하면서 가족들이 생계수단을 잃은 채 소외되거나 과거 치열한 체제 대결과정에서 정상적인 생활이 사실상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 감안됐다.

납북자의 상봉, 송환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내에 있는 그 가족이나 귀환 납북자의 피해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이 배경이 된 셈이다.

앞서 지난 달 말 시행된 남북관계기본법이 정부가 한반도 분단으로 인한 인도적 문제 해결과 인권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이산가족의 생사·주소 확인, 서신교환 및 상봉을 활성화하도록 시책을 수립토록 한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납북자 가족이나 귀환 납북자들이 공권력의 납북에 대한 대응이나 수사과정에서 부당한 고문이나 폭력에 왕왕 노출되면서 체제 대결의 희생양으로 내몰린 경우도 있었다는 것을 국가가 인정하고 보상대상에 넣었다는 점이다.

이번 법안의 대상은 크게 납북자 가족과 귀환 납북자 및 그 가족, 귀환 납북자 및 납북자 가족 중에서 납북을 이유로 공권력에 의해 사망하거나 상이를 입은 자 등으로 나눠 볼 수 있다.

대상에 따라 혜택을 달리한 점도 이 법의 특징이다.

즉, 납북자 가족과 3년 이상 납북됐다가 귀환한 납북자 및 그 가족에게는 ‘피해구제금’을, 귀환 납북자 및 납북자 가족 중에서 납북됐다는 이유로 고문·폭력 등 국가 공권력에 의해 사망하거나 상이를 입은 자에 대해선 ‘보상금’과 ‘의료지원금’을, 귀환납북자에 대해서는 각종 ‘지원금’을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피해구제금이란 용어를 쓴 것은 국가의 부작위 의무에 대한 보상 또는 배상이 아니라는 점을 명백히 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시 말해 납북 자체에 대한 책임 문제가 아니라 납북상태가 지속된 데 따른 가족들의 피해구제 차원이라는 게 정부측 설명이다.

피해구제금은 납북기간과 생계 유지 상황 등을 참작해 정해진다.

국가 공권력에 의해 사망했거나 상이를 입은 피해자의 경우 당시 월급과 월 실수령액 등을 고려한 호프만식 계산법에 따라 보상금이 나가고 아직 치료를 받고 있는 경우에는 의료지원금도 지급된다.

이와 함께 3년 이상 납북됐다가 귀환한 납북자의 경우 정도에 따라 10가지에 달하는 지원혜택이 돌아간다.

의료보호, 생활보호는 물론 주거지원과 교육지원 등이 이뤄지고 정착금도 지원된다.

북한에서 취득한 자격과 이수한 학력을 인정하는 점도 눈에 띈다.

다만 이 지원은 이적행위를 한 경우에는 배제된다.

다른 대상과는 달리 귀환 납북자의 경우 4명 가량이 이미 지원대상으로 꼽힌다.

이들은 이미 탈북자에 준해 지원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납북자 가족과 귀환 납북자 등에 대한 지원은 해당자가 법 시행 이후 1년 내에 국무총리 산하 납북피해 구제 및 지원심의위원회에 신청해야 심의를 거쳐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러나 입법과정이 순탄해 보이지만은 않아 보인다. 입법예고와 공청회, 국회 등을 거치면서 수혜 대상과 규모 등을 놓고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기 때문이다.

우선 이 법은 구제 대상을 정전협정을 체결한 뒤 이뤄진 납북으로 국한함에 따라 당장 전쟁 당시 납북자 가족의 반발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정부로서는 전시 납북자의 경우 그 숫자가 많은 것은 둘째로 하더라도 사실관계 규명이 어려운 만큼 또 다른 사회 갈등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예산 사정도 감안됐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보다 더한 문제는 지원 규모를 놓고도 입장차이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법 안에서도 납북자 가족과 귀환 납북자, 공권력에 의한 피해자 등 케이스가 다양한데다 민주화보상법 등 종전에 과거사 정립 차원에서 이뤄진 여러 입법과의 비교대상이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는 이와 관련, “과거 유사입법의 제개정 문제와 예산 당국과의 협의, 관련 단체의 희망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 시행령에서 구체적으로 정할 것”이라며 “아직까지는 지원 규모에 대해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납북을 둘러싼 사실관계 규명을 놓고도 엇갈린 해석이 가능해 향후 심의 과정에서 불씨가 될 전망이다.

예컨대 우리 정부가 납북자로 관리해온 김영남씨의 경우 본인이 ‘납북도 의거 입북도 아닌 돌발적 입북’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실제 정부는 지난 3월 말부터 납북자 실태조사팀을 만들어 납북자 485명의 가족을 방문해 일일이 조사 중이지만 사실관계 규명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관계자는 “법 시행 이후 출범하는 납북피해구제 및 지원심의위원회가 납북피해자 여부를 결정하고 지원 및 보상을 의결할 예정”이라며 “이번에 대상에서 제외된 전시납북자에 대해서는 실태조사 추진 문제 등을 관계부처와 협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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