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치의 현실 속에서 (대북 제재결의안을 포기하라는) 미국의 요청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지난 15일 대북(對北) 비난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한 뒤 일본 외무성 고위관계자는 현지 언론에 이러한 막후 정보를 흘렸다.

최대동맹인 미국이 막판 ’엇박자’를 놓음으로써 ’제재결의안’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실상을 들려준 것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직후 일본 정부는 사실상 미국이라는 존재에 기대 결의안을 밀어붙였고 미국의 전폭적인 협력을 기대하며 긴밀히 조율했다.

그러나 결국 미국은 막판에 북핵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 및 이란 핵문제에서 공동 보조를 맞추고 싶었던 러시아 등을 우선하며 ’비난결의안’으로 일본을 주저앉혔다.

대개의 일본 언론은 스티븐 해들리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대북결의안 채택 직전인 16일 새벽 아베 신조 관방장관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 “일본 외교의 위대한 성과이자 승리”라며 “(유엔헌장 7장에 대신하는) 문구는 구속력이 있고, 위협에 대한 인정도 있다”며 일본 외교를 극구 칭찬한 장면에 고무돼 일본이 주도한 결의안 채택이 ’외교 승리’라는 식으로 자평했다.

하지만 일본 야당과 외무성 일각, 진보 논조의 일부 언론, 한반도 전문가들은 ’미국 추종’ 외교의 한계를 구체적으로 지적하며 중국 및 한반도의 존재를 의식한 외교의 다각화를 촉구하는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은 이론적으로 무력제재까지 가능한 대북 제재결의안을 시종일관 고수하며 ’선제공격론’까지 제기, 남·북을 공히 자극하고 북한의 후원자인 중국의 역할을 흔들려는 일본의 자세는 대북 대처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대체적 합의수준을 뛰어넘은 것이라는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본을 활용하려는 미국의 전략을 유의하라고 촉구했다.

제1야당인 민주당의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대표는 17일 한 강연에서 일본이 추진한 유엔헌장 7장이 삭제된 것에 대해 ’미국은 일본에 강경한 역할을 맡기고 뒤에서 중국 및 러시아와 담합했다’며 “일본 정부는 미국의 속셈을 읽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한반도 전문가인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게이오(慶應)대 교수는 “일·미의 제재결의안에는 중국과 러시아가 강력히 반대하고 한국도 비판적이었다”며 “여기에는 러·일전쟁 이후 북동아시아의 ’지정학적 벽’이 있다. 일·미동맹 만으로 그 벽을 넘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엄한 조치를 취하면 취할수록 동시에 외교해결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며 “근린외교의 재구축에는 이번 미사일 결의안 논의과정에서 더욱 뒤틀린 중·러·한국 뿐 아니라 북한과의 관계 타개도 포함된다”며 대(對)아시아외교의 활성화를 주문했다.

니혼게이자이(日經)신문은 17일 “일본 정부는 국제사회가 일치된 메시지를 발표한 성과를 강조하지만 고집해왔던 유엔헌장 7장에 따른 제재는 막판에 단념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일본의 유엔외교의 한계를 노정했다”고 지적했다./도쿄=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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