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세 밝지 않은 北 '일반화의 오류' 쉽게 범해
美 '제국주의' 한 덩어리로만 인식..'다양성' 간과
'벼랑끝 전술' 결과적으로 상대 입지 넓혀주는 꼴


북한은 모든 정책을 결정한 뒤 이를 설명하면서 '우리식대로'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그 누구에게도 예속 받지 않고 자신들만의 주체적 판단에 의해 정책을 결정하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추진해 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제정세와 국제사회의 이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논리와 잣대만 앞세운 북한의 정책결정은 그릇된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부시는 다르다 = 국제정세에 밝지 않은 북한은 일반화의 오류를 쉽게 범한다.

북한은 미국을 인식함에 있어서도 '제국주의'라거나 '적'이라는 하나의 덩어리로 인식할 뿐 미국이라는 사회 속에 존재하는 '다양성'을 쉽게 간과하고 있다.

조지 부시 대통령에 대한 북한의 인식도 유사한 듯 하다.

부시 대통령은 2001년 집권 후 클린턴 행정부와 차별성을 부각시키면서 이른바 'ABC(Anything But Clinton)'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북한이 미국을 상대하는 방식은 클린턴 행정부 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 강경한 목소리를 내놓고 이것이 통하지 않으면 강경한 행동을 보여줌으로써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려고 하는 것.

사실 북한은 1994년 클린턴 행정부에 이같은 압박으로 북.미 제네바 합의를 얻어냈고, 1998년에는 대포동 1호 미사일을 시험발사해 미국의 보상합의 직전까지 도달했었다.

북한이 올해 보여준 대포동 2호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보유를 선언한 작년 2.10성명 등은 미국을 압박하면 협상할 것이라는 관성에 따른 조치로 이해된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에서 보여지듯 신보수주의를 축으로 하는 부시 대통령의 미국은 과거와 다르다. 위협에 협상으로 대응하기 보다는 더 강한 위협으로 맞설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상대를 고립시키고 군사적 공격옵션을 선택하기도 한다.

과거 북한이 미국에 사용한 방식의 전략과 전술이 이제는 바뀌어야 할 시점인 셈이다.

◇'이적(利敵)'의 역설 = 북한은 적을 압박하고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해 강경한 정책과 모습을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적의 입지를 강화해주는 꼴이 되곤 한다.

북한이 지난 5일 발사한 미사일 7발은 한반도 위기를 고조시켜 미국의 협상을 이끌어내려는 조치였을 수 있지만 오히려 일본과 미국 내 강경세력에게 명분을 주고 말았다.

부시 행정부는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북한 미사일 발사를 이슈화함으로써 이라크 전쟁으로 급락한 인기를 만회하려는 모습이다.

특히 이라크 전쟁이 성급한 결정이었다는 여론을 만회하기 위해 부시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외교적 노력을 강조하면서 '북한의 도발에도 인내하며 외교를 중시한다'는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있다.

또 일본은 '선제공격론'까지 떠들어 가면서 대북압박의 최일선에 나서고 있다.

오는 9월 일본 집권 자민당 총재선거를 앞두고 가장 유력한 차기 총재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은 강경대응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자국민의 대북반감을 자극하고 인기도를 높여가고 있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이 8∼9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46%의 지지를 얻어 2위인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관방장관을 18% 포인트차로 따돌렸고 교도(共同)통신이 7∼8일 실시한 조사에서도 한달전보다 2.5% 상승한 48.1%의 지지율을 얻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도 "북한이 미사일을 쏜 결과 미국의 네오콘들과 일본의 재무장 세력들이 절씨구나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타이밍을 잡아라= 2000년 미국과 미사일 협상을 벌이던 북한은 미사일 포기에 대한 좀 더 많은 대가를 받아내고자 협상을 끌었다.

시간이 늦어지면서 클린턴 대통령의 임기는 종료를 향해 달려갔고 거의 수교 직전까지 다가섰던 북.미관계는 부시 대통령의 집권과 동시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미사일 발사로 국제사회의 이목 끌기에 성공한 북한은 중국과 남한의 설득 노력을 뒤로한 채 6자회담 복귀를 마냥 거부하고 있다.

북한이 6자회담 복귀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던 금융제재 문제가 여전히 미해결 상태이기는 하지만 비공식 회담으로 못박고 있는 상황에서 회담에 참가하고 북.미 양자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해볼 만한 시도라는 분석이다.

결국 이번에도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오지 않는다면 유엔 등 국제사회의 대북압박 여론만 고조시키면서 협상의 최적 타이밍을 놓치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구태의연한 상황인식= "우리의 선군정치가 남한의 안전을 지켜주고 있다."
부산에서 열린 제19차 남북장관급회담 참가했던 북측 대표단은 미사일과 6자회담 복귀에 대한 남측의 문제제기에 선군정치 유용론을 내놓았다.

대다수 북한 주민은 북한의 군사적 억제력이 미국의 침공을 막고 있다고 믿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 대표단의 이같은 발언은 선군정치로 인한 핵.미사일 우산이 남한을 보호하고 있다는 자신들의 믿음을 가감 없이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남한 국민에게 그러한 발언은 '우스개 소리'로 들릴 뿐.

6.15 6주년 행사에 참가했던 북한 안경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이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전쟁의 화염 속에 휩싸이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자신들의 언급이 남쪽의 정치적 상황에 영향을 줄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착각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다 유엔 결의안이 통과되기 전 박길연 유엔주재 북한대사는 "미ㆍ일의 대북 포위전략이 강화되면 될 수록 공화국의 핵 보유와 미사일 운반 수단은 더욱 커질 것이며 중국과 러시아의 미ㆍ일 견제력도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언제나 북한편을 들어줄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이지만 양국은 '유엔헌장 7장'이 배제된 결의안에 찬성입장을 밝혔고 북한은 국제사회 막다른 골목에 도달하고 말았다.

앞서 북한은 6자회담 복귀를 촉구하는 중국의 외교적 노력을 무시했고 중국 후이량위 부총리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면담 요청까지 거부하는 등 중국의 입장을 고려한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정확한 상황 인식이 상황에 적합한 행동을 끌어낸다는 점에서 북한의 착오적 상황인식은 오히려 국내외적으로 반감을 야기하고 있는 셈이다.

◇힘보다는 민심 = 북한은 체제를 지키기 위해 '자위적 억제력'을 강화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6.25전쟁이 완전히 종식된 것이 아니라 잠시 중단됐을 뿐이라고 믿는 북한의 입장에서 항상 미국의 '침략'에 두려움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을 이해 못할 것은 아니지만 군사력 증강이 나라를 지킨다는 인식은 일반인의 동의를 받기 어렵다.

더군다나 미사일 발사가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것이라면 미국과 협상이 끝날 때까지 '그럭저럭' 살아가야만 하는 북한 주민들의 삶은 볼모가 될 뿐이다.

여기에다 유엔의 대북결의안이 채택된 가운데 앞으로 북한의 미사일 개발을 막기 위한 국제적 공조가 본격화되면 금강산 관광사업과 개성공단사업 등 남북 간 경제협력사업도 타격을 받을 수 있고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는 현재의 수준보다 훨씬 강화될 것으로 예상돼 경제적 어려움을 극에 달할 전망이다.

식량난과 경제적 궁핍함을 피하기 위해 중국에 나와 있는 탈북자의 숫자가 수 만 명에 달하고 먹거리를 구하기 위해 국경을 몰래 넘는 북한 주민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김정일 체제의 유지는 힘이 아닌 민심을 잡는데서 나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국방비 지출도 중요하지만 경제를 살리기 위한 비용의 지출이 긴요할 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도 국방지출을 줄이고 민심을 구하려는 모습을 보여야만 할 것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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