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권은 북한 미사일 사태를 호도하다 못해 이제는 그것을 비판하는 쪽을 향해 ‘안보독재’라는 딱지를 붙이며 “새벽에 회의를 해서 국민을 불안하게 해야 하느냐”며 오히려 역정을 내고 있다.

적반하장도 이 정도면 예술이다. 청와대의 지적대로 과거 군사정권 시절 ‘북한의 침투’를 내세워 전쟁 분위기를 조성하고 그것으로 반정부 세력을 몰아세웠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지금 청와대는 “일부 야당과 언론이 위기를 부풀리면서 야단법석”이라며 과거 군사정권이 하던 ‘안보독재’를 이제는 언론 등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과거 안보에 관한 정보는 언론과 야당에 철저히 차단됐었다. 안보정보는 권력이 독점했다. 그래서 정부가 안보위협을 멋대로 부풀리기도 하고 때로는 없는 일을 만들어 국민을 속이는 일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안보정보와 사항들이 국민에 공개돼 있다.

정부가 그런 것을 덮으려 하거나 과장하려 해도 불가능하다. 국민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북한 미사일 사태가 어떤 정도이며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또 현 정권이 왜 이처럼 북한을 감싸고 도는지 알 만큼 다 안다.

이런 판국에 언론과 야당을 향해 ‘안보독재의 망령’ 운운하는 노정권의 억지에서 우리는 저들이 미숙해서 늑장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그러는 것임을 감지할 수 있다. 지금 과거와는 다른 차원에서 ‘안보독재’를 하고 있는 쪽은 노정권이다.

‘안보독재’ 문제에서 두 번째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국가의 안보는 1%, 아니 0.01%의 가능성에 대처하는 개념이라는 점이다. 전쟁이나 무력적 도발사태는 그리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어느 나라에서는 수백년 평화가 유지되고 있다. 그럼에도 나라마다 GDP의 3%정도를 국방비에 쓰고 있다.

효율로 따지면 바보 같은 ‘투자’다. 그 돈을 국민생활에 쓸 수 있다면 나라는 훨씬 윤택해질 것이다. 그럼에도 안보에 전력투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만일의 경우’로 나라와 국민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안보는 반드시 모자람보다 넘치는 쪽으로 가야 한다. 조금만 ‘이상한 소리’가 나도 야단법석을 떨어야 하고 호들갑을 떨어야 한다. 미국과 일본이(어쩌면 그들이 미사일의 목표가 될는지도 모르기에) 1주일이 넘게 이 문제를 톱으로 올리고 온갖 가능성을 타진하며 ‘호들갑’을 떤 이유가 거기에 있다.

노정권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안보에 관한 개념이 없는 것 같다. 북한을 잠재적 공격자로 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노정권이 미사일 사태에 너그러운 반면, 미ㆍ일과 한국 언론에 혐오감을 드러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노정권은 미국ㆍ일본 그리고 한국의 반대세력까지 통틀어 북한 미사일 사태를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노정권의 주장처럼 북의 미사일 발사가 ‘누구도 겨냥하지 않은’ 비(非)무력적 행위라면 그 본질은 무엇인가? 당연히 정치적인 것이다. 청와대도 그것은 “정치적 사건일 뿐, 안보적 차원의 비상사태는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나라가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북한의 정치적 놀음은 괜찮고 그것에 대응하는 잠재적 피해국들의 놀음은 정치적이어서 나쁘다는 식의 접근은 이 정권의 발상이나 사고(思考)가 친북(親北)에 기초하고 있음을 노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뜻에서 지금 청와대가 미사일 사태와 관련해서 하고 있는 놀음도 분명히 ‘정치적’이다. 차이가 있다면 남의 것은 악용이고 자기 것은 ‘선용’이라는 점일 것이다.

북의 ‘미사일’이 정치적으로 포장된 ‘무력의 과시’라면 우리는 바로 그것을 경계해야 한다. 미사일의 여러 제원을 살펴보거나 북한의 ‘정치적 계산과 감각’을 믿는다면 그 미사일은 분명 미국을 겨냥한 것도, 일본을 겨냥한 것도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렇다면 남는 목표는 바로 한반도 남쪽이다. 김정일은 세계전쟁을 유발할 만큼 어리석거나 무모하지 않다. 그의 도박은 항상 국지전 쪽으로 열려 있다고 봐야 한다. 한국이 두려워하고 경계하고 대비해야 하는 것은 바로 김정일의 국지전이다. 미사일의 메시지는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노정권은 그 가능성을 우려하는 쪽을 안보독재로 몰아붙이며 “우리는 천천히 간다”고 공공연하게 천명하고 있다.
상황은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국민은 노무현 정권의 안보의식과 안보능력에 대한 신뢰를 이어갈 수 없다.

북한의 잠재적 위협을 대상으로 하는 한, 노정권에 우리의 안보를 맡기는 것이 점차 두려워진다. 북이 미사일을 쏘는 상황에서 우리 국민은 안보책임자들이 새벽에 회의를 여는 것을 불안하게 여기기보다는 회의를 열고 긴박하게 대처하는 모습에서 오히려 안도한다는 것을 노정권 사람들은 모르는 척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노정권의 안보의식이 불안한 것이다. ‘안보불감증’ 또는 ‘천천히 안보’보다는 차라리 ‘안보독재’가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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