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 주한미군사령관 ‘韓·美 독자사령부’ 발언 의미
주한미군 감축 가속화… 駐日미군에 종속될 가능성도
韓·美지휘체제, 평시 독립·유사시 공조 ‘일본형’ 검토



◇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이 13일 오전 국회 안보포럼 주최로 열린 강연회에서 ‘북한군사력의 실체와 한·미관계의 현주소’라는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전기병기자 gibong@chosun.com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의 13일 ‘한·미 독자사령부 창설’ 발언은 주한미군과 한국군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새 틀’을 모색하고 있음을 공개적으로 확인했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적지 않다.

이는 1950년 7월 6·25전쟁의 와중에서 미군(유엔군)에 넘어간 전시(戰時) 작전통제권이 한국군으로 되돌아오는 것이 출발점이다. 한미 연합사가 해체되고, 한반도 안에서 ▲한국군은 한국군대로 ▲주한미군은 주한미군대로 ‘2원적 지휘체계’를 갖는 것은 한반도 안보 문제 차원에서 정밀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주한미군 감축, 위상약화 예상=한미 연합사 해체는 외형상 1978년 창설된 연합사 체제가 28년 만에 막을 내리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실제 한반도 안보에서 갖는 의미는 훨씬 크다.

1990년대 초 ‘한국방위의 한국화’ 계획에 따라 한미 야전사(CFA)가 해체된 뒤 연합사마저 해체될 경우, 한미 간의 긴밀한 연합작전 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벨 주한미사령관도 이날 강연에서 언급했듯이 미군은 한국군을 지원하는 보조적인 역할로 달라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유사시 미군 지원이 해군, 공군 위주로 바뀌어 주한 미 지상군 병력은 감축될 수밖에 없다. 오는 2008년까지 2만4500여 명으로 줄어들게 될 주한미군의 규모는 더욱 감축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현재 대장인 주한미군사령관의 계급은 중장급으로 낮춰질 가능성이 크다.

또 주한미군사령관은 미 워싱턴주에서 일본의 자마 기지로 이전하게 될 미 육군 1군단사령부(UEX)의 지휘를 받게 돼 주한미군이 주일 미군에 종속될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유사시 최대 69만명의 병력, 5개 항모 전단(戰團) 등 160여척의 함정, 1600여대의 항공기 등으로 구성될 미 증원전력(增援戰力) 규모도 대폭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 한미 연합사 해체에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이유다.

하지만 한미 연합사가 해체된다고 양국간 협조 채널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미 양국은 ‘전시 작전기획협조단’ 또는 ‘연합전략기획단’ 성격의 협의조정기구를 신설, 유사시 양국 연합작전 문제 등을 협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체제 변화는 다국적 집단방위 체제를 유지하면서 전시엔 일원화된 지휘체제로 운영되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는 성격이 다르다. 오히려 평시 독립된 지휘체제를 유지하고 유사시엔 ‘미·일 공동계획검토위원회’ 같은 기구에서 공동 작전계획을 수립·수행하는 일본의 병립형(竝立型)에 가까운 것이다.

국방부 산하기관의 전문가는 “종전 미·일 양국은 완전히 독립적 관계를 유지하고 유사시 연합작전 때에만 협력 관계를 구축했는데 최근 미·일 안보협력 강화와 주일 미군 재편으로 협력의 강도가 크게 높아지고 있다”며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이후의 한미 지휘체제는 미래의 일본형에 가까울 것”이라고 말했다.

◆정보감시능력 강화 등 사전준비 필요=전시 작전통제권이 한국군에 환수되면 연합사 해체가 불가피하겠지만 안보공백이 생기지 않기 위해선 그 전에 철저한 사전준비와 검토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우선 독자적인 정보감시 능력의 확보다.

최근 북한 미사일 발사 사태에서도 드러났듯이 대북 정보의 대부분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상태에선 유사시 독자적인 작전통제권을 행사하기 어렵다.

또 작전통제권 환수 및 연합사 해체 시 ‘작전계획 5027’ 등 대북 작전계획의 전면적인 수정이 불가피하다. 한국군은 아직 독자적인 작전기획 능력이 부족하다. 현재 대부분의 대북 작전계획은 대규모 미 증원군의 투입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한미 양국이 미래 지휘체제로 검토하고 있는 일본형 지휘체제는 연합작전의 효율성이 떨어진다. 단일지휘 체제보다 신속한 대처가 어렵기 때문이다.

연합사 해체 시 한반도 정전(停戰)체제를 감시하고 있는 유엔군사령부 위상도 재검토 대상이다. 유엔사를 해체하려면 한반도 정전체제를 대체할 평화체제를 먼저 구축해야 위기사태 발생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벨 사령관이 이날 강연에서 “(연합사 해체 이후) 한미 동맹이 억지력을 유지하고 전쟁에서 승리하는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변이 있어야 한다”며 세 가지 질문을 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그는 ▲한국 정부가 독자적 작전통제를 할 때 요망하는 상태는 무엇인가 ▲이때 미국의 기여 수준은 어떤 것인가. 연합 지휘에서 독자적인 지휘를 하게 될 때 미국의 지원은 어느 정도여야 하는가 ▲이런 변화가 주한 유엔군과 정전협정 유지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등에 대해 답변이 있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키워드 전시(戰時) 작전통제권

작전통제권(Operational Control)은 흔히 지휘권과 혼용되지만 실제로는 지휘권보다 좁은 개념이다. 작전계획이나 작전명령과 관련된 것에 국한되며, 행정·군수·인사·군기 등에 대한 책임과 권한은 포함되지 않는다.

현재는 한·미 양국군의 방어준비태세(데프콘)가 평상시의 ‘데프콘 Ⅳ’에서 ‘데프콘 Ⅲ’로 높아지면 작전통제권이 한국군에서 한미연합사령관에게 넘어가도록 돼 있다.
/유용원군사전문기자 bemi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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