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 미사일 항의도 못하고 얼굴만 붉혀
北 “선군 덕에… 쌀달라” 준비된 말만



◇ 북한 미사일 발사 사태 속에 열렸던 남북장관급회담이 결국 파국을 맞았다. 남측의 이종석 수석대표(왼쪽)가 예정보다 하루를 앞당겨 13일 철수하는 북측 권호웅 단장을 부산 웨스턴조선호텔에서 배웅하고 있다. 두 사람의 표정이 굳어 있다. /부산=김용우기자

북한이 19차 장관급회담에서 “미사일 발사는 군부의 결정”이라며 논의 자체를 회피, 결국 회담을 결렬시킴에 따라 ‘안 한 만도 못한 회담’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북 “미사일은 모른다”

우리측은 미사일 발사와 6자회담 복귀를 회담의 핵심 의제로 설정했다고 미리 공개했다. 그러나 북측은 이번 회담에서 미사일 발사는 모른다는 자세였다.

12일 전체회의에서 미사일 발사에 대해 “6일 외무성 대변인이 밝히지 않았느냐”며 언급 자체를 회피했다. 13일 성명에서도 “남측이 상(相·장관)급회담 소관 밖의 문제들만 올려놓았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지난 5월 철도 시범 운행에 합의해 놓고도 군부의 동의를 받지 못했다며 하루 전날 일방적으로 행사를 취소한 적도 있다.

이번에도 ‘사고는 군부가 쳤다’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한 것이다. 그러나 장관급회담은 남북문제를 총괄해 다루는 최고위급 회담인데, 대표단이 남북 간 가장 큰 현안에 대해 ‘우린 모른다’고 나오는 것은 무책임의 전형이라는 지적이다.

송대성 세종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이번에 온 북한 대표단은 어차피 쌀 지원, 성지(聖地) 방문 요청, 선군정치 등 허가받은 얘기만 하고 오라고 지시받은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동국대 고유환 교수는 “선군 발언도 정세가 어두운 군부가 써준 대로 읽었을 것”이라며 “김정일 위원장이 1차 미사일 위기 때처럼 군부를 전면에 내세워 돌파해보려는 과정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 회피전략 몰랐나

북한 대표단이 ‘우린 모른다’는 입장을 갖고 회담에 나올 것이라는 점을 우리 정부는 몰랐을까. 정부 당국자는 “안 올 수도 있다고 보았는데 내려와 혹시나 무슨 방안을 갖고 오거나 입장 표명이 있지 않을까 기대는 했다”고 말했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남북관계연구실장은 “북한은 절대로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핵과 미사일문제를 논의할 생각이 없었다”며 “북한 입장에서는 미사일 문제는 미국에 대한 카드이기 때문에 원래 우리와 논의할 주제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12~13일 열린 수석대표 접촉에서 “미사일 문제는 ‘수석대표끼리 협의해 결정할 문제가 아닌 것은 안다. 지금 한 얘기를 귀측 지도층에 그대로 전달하고, 반응이 있으면 알려달라’는 식으로 얘기했다”고 말했다.

간접 대화를 시도한 셈인데, 북한의 대답은 ‘파국적 후과(결과)에 대해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성명서였다. 한 북한 전문가는 “통일부가 이런 결과를 예상하고도 회담 자체가 부처의 생존 논리니까 강행한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김민철기자 mckim@chosun.com
황대진기자 djhwa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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