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민은 지금 한반도 주변에서 벌어지는 엉뚱한 사태를 목격하고 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쏜 후 과연 어느 나라가 우리의 적과 동지인지 헷갈리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러도 나무랄 수 없는 친구로, 일본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나쁜 국가로, 미국은 태평양 거리만큼이나 멀어진 나라로 변한 것인가.

청와대 사람들의 코멘트를 보면, 이제 한·미·일 동맹관계는 먼 옛날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동안 정부의 대북정책을 보면서 전통적인 동맹관계에 뭔가 금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는데,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모든 것을 드러내 주었다.

노무현 정부의 외교전략에 무슨 오묘한 뜻이 숨어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20세기 초 나라를 빼앗긴 역사를 배웠고, 해방 후 우리의 경제발전 과정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현재 돌아가는 형국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북한은 인민들이 먹는 식량보다 미사일과 핵 개발에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는 나라다. 그 결과 백성들은 먹을 것이 모자라 남한과 국제기구에서 보내주는 구호식량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곳엔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할 자유도 없다.

민주주의 국가에선 상상할 수 없는 정치범 수용소도 있다. 그들은 대외적으로도 약속을 수시로 깬다.

회담이나 이벤트 일정을 분(分) 단위로 정해 놓고도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무례한 나라다.

미사일 발사 후 부산에서 열린 남북장관급회담도 북 대표단의 비행기가 평양공항을 출발할 때까지 오는지 안 오는지 오리무중이었다.

국가의 간판을 달고도 이럴 수 있는 것인가. 같은 민족이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도저히 자유 대한민국의 친구가 될 수 없는 나라다.

이런 북한에 대해 한국정부는 일관되게 ‘왼뺨을 맞으면 오른뺨도 각오하는 식’의 관계를 맺어 왔다. 국가 간의 관계에서 유례없는 광경이다.

북이 아무리 매너 없는 짓을 해도 공개적으로 따끔한 말 한마디 못했다. 그저 북이 만나 주는 것에 감지덕지할 뿐. 엊그제 부산에 온 북측 대표는 마침내 “남한이 김정일 장군 덕을 보고 있다”며 쌀 50만t을 내라고 떵떵거렸다.

그동안 오냐오냐 하며 북한을 마냥 스포일시킨 이 정부의 업보다. 청와대는 “미사일 발사가 어느 누구를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 달러 한 푼이 아쉬운 북한이 수백만 달러가 드는 미사일로 심심풀이 불꽃놀이를 했다는 것인가. 또 남한밖에는 겨냥할 데가 없는 스커드 미사일은 왜 쐈나.

남한에 대한 평화 제스처로 그 비싼 스커드 미사일 재고품을 공중에 폐기처분했다는 말인가.

북한에 대해 매사 이런 식이니, “남한은 장군님의 은혜에 보답하라”는 북 대표의 당당한 요구가 나오는 것이다. 청와대가 화낸 상대는 미사일을 쏜 북한이 아니라, 정부의 늑장 대처와 대통령의 침묵을 비판한 야당과 언론이었다.

‘세상이 바뀌어도 생각을 바꿀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 정부 사람들이 바꾸려는 세상은 어떤 것인가. 미사일 사건 처리과정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묻게 된다.

북한이 쏜 일곱 발의 미사일은 정확하게 한·미·일 동맹체제를 명중시켰다. 그 효과가 대번에 한국과 일본에서 나타났다.

일본 정부에선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론이 일어났고, 청와대는 마침내 잠복했던 적(敵)을 찾아낸 것처럼 전쟁 불사의 자세로 일본을 공격하고 있다.

벌써 북한 미사일문제는 날아가고 한국과 일본의 분쟁만 남게 되는 양상이다. 한국이 북한을 대리하여 싸우는 꼴이다. 북 미사일 발사는 일본이 바라던 재무장론에 날개를 달아 줬다. 그러면 중국이 가만있겠는가.

양 대국이 군비 증강 경쟁을 하면 한반도는 또다시 샌드위치 신세가 된다. 북한은 이렇게 한반도 전체에 위험을 가져오는 행위를 했지만, 대통령은 침묵하고 청와대는 야단법석 떨 이유가 있느냐고 여유를 부리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한국의 최대 경제 파트너이자,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나라다. 한강의 경제 기적도 이 두 나라의 자본, 기술 협력 없이는 불가능했다.

작년 한 해 대일 교역액은 724억 달러, 대미 교역액은 719억 달러였다. 인적 왕래를 보자. 작년 한국과 일본 국민의 왕래는 435만명, 한·미 양국은 135만명이었다.

어느 모로 보나 우리가 아끼고 관계를 더욱 발전시켜 가야 할 상대다. 이 두 나라를 멀리 떠나가게 하는 것이야말로 국익을 해치는 행위이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