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처음으로 남북이 얼굴을 맞댄 제19차 남북장관급회담이 아무런 성과없이 사실상 결렬된 것은 이번 회담에 임한 남북의 입장 차이가 워낙 컸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회담이 열리기 전부터 정부는 아무 합의 없이 회담이 끝나는 상황을 배제하지는 않았을 정도로 뜻밖의 상황은 아니지만 회담 일정을 다 채우지 못하고 하루 앞당겨 종결될 지는 이날 아침까지도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양측의 입장이 좁혀질 수 없는 평행선을 달렸다는 의미다.

양측의 입장 차이는 회담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12일 기조발언에서부터 극명하게 드러났다.

무엇을 얘기할 지에 대해서부터 완전히 엇갈렸다.

남측 수석대표인 이종석(李鍾奭) 통일부 장관은 기조발언의 대부분을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강한 유감과 6자회담 복귀를 촉구하는 데 할애했다.

지난 7일 고심끝에 회담을 예정대로 추진키로 결정하면서 공개적으로 밝혔던 이번 회담의 의제 그대로다.

하지만 북측 대표단장인 권호웅 내각 책임참사는 기조발언에서 미사일 문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그동안 제기했던 국가보안법 철폐 등 이른바 ’3대 장벽’을 제거할 것을 되풀이하고 쌀 50만t 차관과 경공업 원자재 제공을 요구하는 한편 북한의 선군정치가 남한의 주민들을 살린다는 엉뚱한 주장을 펴 남측 대표단을 당혹스럽게 했다.

남측 대표단은 이후 토론 과정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가져온 국제 정세의 불안과 추가 발사시 파장을 경고하며 6자회담 복귀를 위한 설득 작업을 폈지만 북측의 반응은 냉담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대표단은 미사일 발사를 정상적인 군사훈련의 일환으로 규정한 지난 6일 외무성 대변인 발표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며 논의를 회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6자회담 복귀 문제와 관련해서도 “여기서 논할 문제가 아니다”고 협의를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측 대표단이 이처럼 미사일 문제 및 6자회담 재개 문제를 논의하지 않으려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은 대표단이 이 문제들에 대해 결정권이 없는 대남라인 인사들로 채워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남측 대표단은 북측 대표단이 실시간으로 평양과 연락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 정부의 우려와 경고가 북한 지도부에 전달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고 설득 작업을 계속했다.

그럼에도 양측이 추가 논의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회담을 하루 앞당겨 끝낸 데는 쌀 차관 제공 문제가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북측은 수석대표 접촉 등에서 쌀 50만t 차관 제공에 대해 강한 집착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우리 정부는 이미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탈출구를 찾을 때까지 이를 유보하기로 결정한 만큼 협상의 여지가 없었던 것으로 관측된다.

따라서 북측은 이번 회담에서 쌀 차관 제공과 관련한 양보를 얻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 더 이상의 논의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고 남측도 쌀에만 관심이 있는 북측을 더 붙들어 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아울러 현재 평양을 방문해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과 만난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의 설득 노력이 별 효과를 못보고 있다는 소식도 회담에 임하는 남측 대표단의 힘을 뺐다.

정부는 이번 회담이 아쉽게 이렇다 할 성과없이 마무리됐지만 북한 고위 당국자에게 직접 미사일 발사에 대해 충분히 따지고 6자회담 복귀를 강하게 설득할 수 있었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회담 관계자는 “그동안 북한이 언론 보도 등을 통해 미사일 발사에 따른 문제점을 들었겠지만 우리 정부로부터 직접 들은 것과는 의미가 다르다”면서 “북측이 이번 회담 내용을 지도부에 정확하게 전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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