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재성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북한이 지난 5일 동해상에 미사일 7발을 발사한 이후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해결책이 나오기는커녕 무엇이 문제인지도 불명확하다.

북한이 왜 미사일을 발사했는가. 북한의 스커드 미사일은 우리 안보에 위협인가 아닌가. 우리 정부의 대응은 적절했는가. 추가 미사일 발사 가능성이 있는가.

남북 장관급회담 개최는 적절한 일인가. ‘사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는’ 일본의 선제 공격론에 ‘물러섬 없이’ 맞서는 게 우선인가.

문제의 본질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일본이 미사일 문제는 물론 북핵문제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자국의 현안에 얽매여 과도한 해결책을 내놓는 것을 총체적 관점에서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우리가 북한의 움직임을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움직이는 과녁’만 쫓고 있다면 이는 큰 문제다.

미사일 문제의 본질은 북핵이고, 북핵문제는 미·북 간의 대립이 핵심 축이다.

작년 9월 북핵 6자회담 참가국들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원칙과 해법으로 합의한 9·19 공동성명이 나온 지 10개월이 흘렀지만 진전은 거의 없다.

무엇이 필요한지 보여주었지만 어떻게 가능한지는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간 미국과 북한이 모두 두려워했던 것은 ‘선(先) 양보’였다.

한발 물러서는 순간 나라의 안전이 보장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북핵은 20세기에 몰락한 사회주의의 마지막 계승자인 북한과 핵 테러를 이겨내야만 살 수 있는 21세기 패권국인 미국 간의 생존을 건 싸움의 대상이다.

9·19 공동성명 이후 전반전은 북한의 열세로 끝났다. 미국의 강력한 금융 제재 카드 때문이다. 금융 제재 해제를 위해 북한은 미사일을 선택했다.

모든 협상은 협상 테이블 밖의 세력 균형을 반영한다. 북·미 양국은 자신들의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해 회담장 밖의 세력 균형에서 우위를 점하려 한다. 회담장에 돌아가 상대에게 먼저 양보하라고 요구하기 위해서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안은 중국의 반대 때문에 일본이 원하는 수준에서 타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만일 북한이 중국이 주관하는 임시 6자회담에 복귀한다면 북한은 미사일 발사를 유예하는 대가로 금융 제재 해제를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미사일 발사 유예를 어긴 북한에 대해 1999년에 풀었던 경제 제재를 재부과할 가능성이 더 높다.

문제는 긴장이 고조될수록 6자회담 참가국 모두의 선택 폭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미국은 앞으로 더 많은 핵탄두와 성능이 향상된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만드는 북한을 상대해야 할 것이다.

북한은 더욱 ‘야단법석’을 떠는 일본을 상대해야 한다. 한국과 중국은 동북아 군비 경쟁 때문에 더 이상 북한편을 들 수는 없을 것이다. 대북 선제 공격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의견도 계속 나올 것이다.

우리 정부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정부가 미사일 발사를 ‘도발’이라고 규정한 것은 북한에 경고를 했지만 무시당한 데 대한 섭섭함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마주 보고 달려오는 미·북을 보면 신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언론과 국민의 질타가 야속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북한은 민족 공조보다 미·북 협상을 중시한다. 북한 미사일을 두려워하는 미국민에게 북한 노동자들이 만든 개성 냄비를 쓰게 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국제정치 구조의 압력에 굴복하는 것은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감당하기 벅찬 국제정치의 과제를 총체적 해결책 없이 덮고 가는 것도 문제다.

‘북핵 불용, 평화적 해결, 주도적 역할’이라는 북핵 해결에 관한 기존의 3원칙을 이끌어 가기에는 우리의 힘이 부족하다.

북핵 위기가 심화되면서 나타나고 있는 주변국과의 마찰을 고려할 때 더욱 그러하다. 북핵문제와 주변국 관계 등 총괄적인 분석에 입각한 현실적인 원칙을 다시 세워야 한다.

원칙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에 관해서는 국민의 이해와 희생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그런 자신감 있는 정부가 필요하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