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 언급없이 “쌀·원자재 지원하라”

지난 5일 미사일을 무더기로 발사한 후 일주일이 지난 12일, 북한 대표단은 부산 남북장관급회담 전체회의에서 미사일 문제는 언급하지 않고 적반하장식 주장을 하면서 쌀 지원을 요구했다.

북측 대표단 권호웅 단장은 기조연설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선군(先軍)정치가 남측의 안전도 도모해 주고, 남측의 광범위한 대중이 선군의 덕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선군정치는 모든 것을 군사력 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김 위원장의 정치 구호로, 핵 개발과 미사일 발사, 민생보다 군사력 증강 우선 등이 선군정치에 따른 것이다. 북한이 그동안 장관급회담에서 선군정치를 언급한 적은 있지만 남한 국민이 선군정치의 덕을 보고 있다고 발언한 것은 처음이다.

북측은 또 8·15 평양 행사 때 남측 대표단이 ‘성지(聖地)’를 방문하는 것을 제한하지 말라고 했다. 북한의 성지란 김일성 주석 시신이 있는 금수산기념궁전, 혁명열사릉 등을 말하는 것이다. 북측은 이어 내년부터 한미합동군사연습 중지와 국가보안법 철폐를 요구하면서 쌀 50만t 차관 제공과 경공업 원자재 제공을 요구했다.

북측 대표단은 그러나 미사일 발사 문제에 대해서는 “지난 6일 외무성 대변인이 밝히지 않았느냐. 그것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해 언급 자체를 회피했다. 6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미사일 발사는 자위적 국방력 강화를 위한 정상적인 군사훈련의 일환”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남측 수석대표인 이종석 통일부장관은 “미사일을 추가 발사하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누가 남쪽에서 귀측에 안전을 지켜 달라고 한 적이 있느냐. 우리의 안전을 도와주는 것은 북측이 미사일 발사와 핵개발을 하지 않는 것”이라며 논리에도 맞지 않고 받아들일 수도 없으니 더는 제기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이관세 통일부 정책홍보실장은 “북한은 지난 18차 장관급회담 때부터 쌀 50만t 차관 제공을 요청했지만 우리는 이미 유보 입장을 밝혔다”며 현재로선 지원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부산=김민철기자 mckim@chosun.com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