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에세이 ‘새벽을 깨우리로다’ 100쇄 돌파 김진홍 목사
70년대 운동권 목회자 청계천 주민들 대변해
“절대빈곤은 줄었지만 상대적 박탈감은 늘어”


“30년 전 병아리 목회자로서 청계천변에서 어려운 분들과 함께 뒹굴었던 시절이 생생합니다. 그래서 당시 발과 가슴으로 쓴 이 책을 틈틈이 꺼내 읽습니다. 30대 시절 순수했던 초심(初心)이 그대로 담겨있는 ‘인생교과서’라고 할까요?”

두레교회 김진홍(65) 목사의 자전에세이 ‘새벽을 깨우리로다’(홍성사)가 최근 100쇄를 돌파했다. 1982년 초판이 첫선을 보인 지 24년 만이다. 그간 판매부수는 32만권 정도로 초대형 베스트셀러는 아니다.

그렇지만 1970년대 초 청계천 판자촌을 무대로 한 기독교판 ‘꼬방동네 사람들’ 격인 이 책이 24년간 절판되지 않고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것은 개신교계에서도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책을 펼치면 저 30년 전 가난에 찌들고, 병에 시들고, 술과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고, 주민들과 철거반 사이의 몸싸움이 끊이지 않는 서울 청계천 하류 성동구 송정동 무허가 판자촌의 모습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주민들은 스스로를 서울특별시가 아닌 ‘서울하등시민’이라고 자조하던 곳이다.

여기에서 무허가 판잣집 하나를 개조해 ‘활빈교회’를 개척한 김진홍 전도사는 스스로 넝마주이 생활을 하며 주민들의 대변자로 나서고 자활(自活)을 돕는다.

좌절도 많았다. “수술보증금이 없다고 병원 네 곳에서 퇴짜맞은 한 아주머니를 업고 성동교를 건너다 그 아주머니가 숨져 버렸을 때는 정말 서울에 불 지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네 등의 죽은 여자가, 십자가에서 죽은 나다. 포기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후 한 세대의 세월이 흘렀고 많은 것이 변했다. 청계천을 덮었던 콘크리트가 제거되고 맑은 물이 흐르게 된 시간의 변화처럼 당시 운동권 목회자의 대표격이었던 김 목사는 이제는 보수단체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 목사는 “젊어선 ‘빨갱이’, 지금은 ‘꼴통 앞잡이’ 소릴 듣고 있다”며 웃었다.

김 목사는 “70년대 당시엔 가난만 극복하면 행복하고 좋은 세상이 올 줄 알았는데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 된 지금 절대빈곤은 줄었지만 상대적 박탈감은 늘었다”고 걱정했다.

그는 그러나 “이 문제를 분배, 평등의 시각에서 접근해선 해결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 목사는 “30여 년 동안 ‘실패가 전공’이라 할 만큼 저 역시 분배와 평등을 위해 싸우고, 여러 실험도 했고 실패도 했다”며 “그 결과 자유민주주의 안에 해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성장 속에 분배가 들어있고, 자유가 신장되면 평등도 구현된다”며 “한쪽을 배척하지 말고, 균형을 맞춰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목사는 “현재 우리 사회는 빈곤극복, 민주화를 이룬 후 모두가 함께 바라보고 나아갈 비전과 꿈을 찾지 못하고 있다”며 “이런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회도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성경에는 다윗과 솔로몬의 ‘성전(聖殿)의 전통’뿐 아니라 모세와 여호수아의 ‘광야의 전통’도 있습니다. 교회가 ‘광야의 정신’을 회복한다면 바른 가치관과 국민정신을 세울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글=김한수기자 hansu@chosun.com
/사진=주완중기자 wjjo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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