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이 제19차 남북장관급회담을 통해 참관지(방문지) 제한을 철폐하라는 요구를 더욱 노골화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참관지 제한 철폐란 상대측 지역을 방문하는 자기측 인원에 대해 참관지 방문을 제한하는 당국의 조치를 풀라는 주장을 말한다. 참관지 자유방문 요구인 셈이다.

권호웅 북측 단장은 12일 전체회의에서 상대방의 체제와 존엄을 상징하는 성지(聖地)와 명소, 참관지들을 제한없이 방문토록 할 것을 주장하면서 다음달 평양에서 열리는 8.15 평양통일대축전 때 ‘남측 대표단’의 방문을 제의했다.

참관지 자유방문 요구는 처음이 아니다. 북측은 작년 12월 제17차 장관급회담에서 이른바 정치.군사.경제 분야의 ‘3대 장벽’ 철폐를 요구하면서 정치 분야 장벽의하나로 이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어 북측은 지난 4월 제18차 회담 때는 6.15 6돌을 계기로 상대측 참관지 자유방문을 허용하자고 했다. 이번에 눈에 띄는 것은 8.15 축전 때 북측을 방문하는 남측 대표단이 ‘성지’에 갈 수 있게 해 달라고 좀 더 구체적으로 요구했다는 점이다.

북측의 요구가 회담을 거치면서 점차 구체화되고 치밀해지고 있는 셈이다.

지난 해 8.15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한 북측 당국.민간 대표단이 우리측이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국립현충원에 참배한 것도 참관지 자유방문을 염두에 둔 고도의 계산에 따른 행위로 보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지난 달 광주에서 열린 6.15행사 때 국립5.18민주묘지에 참배한 것을 두고도 묘지의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비슷한 맥락에서 바라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문제는 이 주장을 관철하려는 북측의 의지가 강해 보인다는 점이다.

참관지 자유방문 문제는 제주도에서 열린 17차 회담 때 막판까지 협상 타결을 막는 걸림돌이 됐고 이 과정에서 북측 대표단 일부가 회담이 끝나기도 전에 짐을 꾸려 호텔 로비에 내려오는 항의성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번 회담에서도 마찬가지다. 북측이 기조발언에서 합동군사연습 철폐 주장 등 다른 요구사항에 앞서 가장 먼저 참관지 자유방문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은 이 문제에 실린 북측의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특히 6.15 행사는 남측지역인 광주에서 열렸지만 이번 8.15 행사는 평양에서 개최된다는 점에서 요구의 강도가 세졌다는 해석까지 낳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점이다. 참관지 자유 방문 문제의 중심에는 국가보안법이 자리잡고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실제 북측이 말한 성지에는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과 우리의 국립묘지 격인 혁명열사릉 등으로,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방문 자체가 금기시되고 있는 곳이다.

남측 주민이 그런 곳에 가거나, 가서 어떤 행동을 하느냐 등에 따라 법적 논란의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법적으로 쟁점이 되는 것을 떠나 남남갈등을 촉발할 우려가 다분하다.

아울러 북측이 이번에 8.15 때 자유로운 참관 요구를 허용해 달라는 대상을 ‘남측 대표단’이라고 표현한 점은 민간 대표단에 그치지 않고 당국 대표단까지 포괄해 겨냥한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으면서 우리측 당국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북측이 자유방문 문제를 집요하게 제기하는 것은 국보법 개폐 논의를 촉발하기 위해서라는 분석도 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북측이 미사일 문제를 따지고 6자회담 복귀를 촉구하는 우리측 입장을 방어하기 위한 카드로 참관지 문제를 보다 구체화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종전 회담에서는 진통 끝에 공동보도문 1항에 우회적인 표현으로 들어갔다.

17차 때는 “상대방의 사상과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그를 위한 실천적 조치들을 취해나가기로 했다”로, 18차 때는 “상대방의 사상과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실천적 조치를 취해 나가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그 실현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로 각각 들어간 것이다.

미세하지만 표현이 17차 때보다 18차 때가 한발짝 나아간 것처럼 느껴진다.

미사일과 6자회담 문제로 충돌하고 있는 이번 회담에서는 공동보도문이 나올 가능성이 불투명한 상황이지만 우리 당국이 고민해야 할 일이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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