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북측 권호웅 단장이 “선군(先軍)이 남측의 안정도 도모해 주고 남측의 광범위한 대중이 선군의 덕을 보고 있다”고 주장함에 따라 그 배경과 의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측이 남북회담석상에서 ‘선군’을 언급한 적은 있지만 북측 장관급회담 대표단장이 선군 때문에 남측이 덕을 보고 있다는 논리를 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미사일 발사 파문으로 강경해진 국내 대북 여론이 더욱 악화될 것으로 전망돼 앞으로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되고 있다.

선군이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치이념을 말한다.

선군사상이나 선군정치라는 표현으로 주로 북한 내에서 사용되고 있다.

북측은 선군사상이 김일성 주석의 주체사상 원리와 요구를 김 위원장이 전면적으로 구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김 위원장이 김 주석 사망 다음 해인 1995년 1월 ‘다박솔 초소’를 시찰하면서 시작됐다는 게 북측 주장이다.

그 내용은 한자 그대로 풀어봐도 군이 우위에 있고 먼저라는 뜻을 담고 있듯이 군대를 ‘혁명의 주력군’으로 내세운다는 게 핵심이다.

국방력과 자위력 강화도 여기에서 나오며 그 목표는 체제고수에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선군정치 확산을 통해 정치체제를 공고히 하며 위기의식을 고취, 체제 결속력을 강화하려는 게 북측 의도라는 분석도 낳고 있다.

남측이 선군의 덕을 보고 있다는 논리는 지금까지 북측 매체의 보도로 나왔다.

무소속 대변지인 주간 통일신보가 2002년 12월 15일 기사를 통해 선군정치의 최대 수혜자가 남측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 남측이 보상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를 편 것이 우리측은 이와 관련한 북측의 첫 보도로 보고 있다.

통일신보는 당시 ‘이른바 대북퍼주기론을 평함’이란 글에서 “선군정치의 덕을 보고 있는 남이 평화의 보상을 하는 것은 도리이고 본분이며 의무”라며 “만약 공화국(북)에 힘이 없었다면 전쟁의 불길이 삼천리 강토에 타번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노동신문 지난 3일 선군정치를 “민족의 자주권과 나라의 평화와 안전을 수호하는 정의의 보검”이라고 칭한 뒤 “다른 나라나 지역 같으면 열 번도 더 새 전쟁이 터졌을 조선반도에서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공화국의 선군정치 덕”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이날 강하게 이를 반박한 것은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이 장관은 “누가 남쪽에서 귀측에게 우리 안전을 지켜달라고 한 적이 있느냐”고 몰아부친데 그치지 않고 “우리의 안전을 도와주는 것은 북측이 미사일 발사와 핵개발을 하지 않는 것”이라며 다시는 거론하지 말 것을 정식으로 요구했다.

그렇다면 북측은 왜 회담장에서까지 이런 생뚱맞은 주장을 하게 됐을까.

우리 정부측은 미사일 문제 때문에 나온 것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측이 대포동 2호 뿐만 아니라 스커드급 미사일까지 발사한 점을 강력하게 문제 삼은 데 대한 ‘방어논리’로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인 셈이다.

실제 북핵이나 미사일은 선군의 결과물이자 핵심으로도 볼 수 있다.


이 장관이 미사일과 핵개발을 언급하며 바로 맞받아친 것도 이런 맥락을 감안한게 아니냐는 분석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북측이 남측의 반발을 예상할 수 있는데도 이 같은 주장을 한 배경에는 군부의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는 해석도 나온다.

미사일 발사를 군사훈련의 일환이며 정당한 자주권 행사라고 주장한 북한 외무성의 ‘항변’에 그치지 않고 한발짝 더 나아갔다는 점에서 남측 정서를 제대로 읽지 못한 채 지나치게 ‘오버’한 것으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이번 주장이 회담장에서 처음 나왔다는 점도 이런 해석의 배경이 되고 있다.

뒤집어 보면 남측 사정을 잘 알고 쌀 차관이나 경공업 원자재 제공 문제가 핵심 현안으로 걸려 있는 대남라인이 자진해서 회담 분위기에 찬 물을 끼얹는 이런 주장을 내놓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는 점도 이런 해석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이런 정황에 비춰 북측이 앞으로 이번 주장을 반복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우리측이 쌀 차관 50만t 제공과 비료 10만t 추가 지원에 대한 논의를 유보하겠다고 못박은 상황에서 북측이 이번 회담에 예정대로 나왔고 실제 회담에서 쌀 차관과 경공업 원자재 제공을 요청한 점은 대화와 이를 통한 경협의 끈을 얼마 만큼 중요하게 보는지를 시사해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발언이 일회성 주장에 그친다고 하더라도 국내 대북 여론의 악화를 몰고 오면서 이번 뿐 아니라 향후 회담에서도 우리 정부의 입지를 좁혀 결과적으로는 북측에 부메랑이 돼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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