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제19차 남북장관급회담에 참석하고 있는 양측 대표단은 회담 이틀째인 12일 전체회의를 갖고 본격적인 협의에 들어갔다.

남측 대표단은 예상대로 기조발언을 통해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강한 유감의 뜻을 표명하고 6자회담에 조속히 복귀할 것을 촉구했다.
북측 대표단은 기본(기조)발언에서 미사일 발사나 6자회담에 대해서는 아무런 입장을 표명하지 않은 채 그동안 주장했던 정치·군사·경제 분야에 걸친 이른바 ’3대 장벽’ 철폐를 다시 거론하는 한편 쌀 차관 제공과 경공업 원자재 제공을 요구했다.

기조발언 내용만 보면 양측이 이번 회담에서 원하는 바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어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하지만 남북은 이날 오후에 참관 행사도 하지 않고 수석대표 접촉이나 실무대표 접촉을 통해 의견을 조율할 예정이어서 극적 타협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엇갈리는 기조발언 = 남측 대표단은 예상했던 대로 기조발언의 대부분을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유감과 6자회담 복귀를 촉구하는 내용으로 채웠다.

지난 7일 회담 개최를 결정하면서 공개적으로 밝혔던 회담 의제 그대로다.

남측 수석대표인 이종석(李鍾奭) 통일부 장관은 기조발언에서 북측의 미사일 발사가 가져온 부정적 결과들을 상세히 지적하고 앞으로 상황이 추가로 악화돼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미사일 추가 발사를 막는데 역점을 둔 듯 “미사일을 추가 발사한다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악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회담 남측 대변인인 이관세 통일부 정책홍보실장이 전했다.

아울러 미사일 문제의 가장 효과적인 틀은 6자회담으로, 회담에 복귀하는 길이 북측에도 이익이 된다고 설명하고 6자회담에 복귀하면 금융문제를 포함한 북측의 관심사에 대해 폭넓게 논의할 수 있다는 미국의 입장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북측의 기본발언은 우리가 의제로 정한 미사일 문제와 6자회담 복귀와는 동떨어진 내용으로 채워졌다.

북측은 상대방의 성지에 대한 제한없는 방문, 외세(미국)와의 합동군사훈련 중지, 국가보안법 철폐 등을 주장했다.

이는 북한이 지난해 12월 17차 회담에서 제기한 이른바 ’3대 장벽’ 제거를 재차 거론한 것으로 특별히 새로울 게 없다는 분석이다.

8.15통일대축전에 남측 당국 대표단을 초청하고 추석을 전후로 이산가족 상봉을 열자고 제의한 것도 시기에 맞춰 매년 해오던 이벤트다.

북한이 요구한 쌀 50만t 차관 및 경공업 원자재 제공은 미사일 문제의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한 우리 정부가 보류하겠다고 밝힌 내용들이다.

결국 미사일과 6자회담 문제에 집중하겠다는 남측 의지가 무색하게 북측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동안 주장했던 사항들을 재차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 회담 전망 어둡다 = 북측이 미사일에 대해 반응을 보이기는 했다.

북측 대표단은 기본발언에서는 아니지만 이후 토의하는 과정에서 미사일 발사에 대해 “7월 6일 외무성 대변인이 밝힌대로 이해를 해달라. 그때 충분히 다 했다”고 간략히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북측은 미사일 발사를 ’정상적 군사훈련의 일환’으로 규정했다.

우려와는 달리 북측이 이번 회담을 미사일 발사에 대한 정당성을 재차 주장하면서 선전의 장으로 활용하는 듯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이에 대해 논의 자체를 하고 싶지 않다는 소극적 모습으로도 읽힌다.

이는 북측 대표단이 미사일 발사 등에 직접 관여하는 군사 및 외무라인이 아닌 대남라인이어서 미사일 및 6자회담 문제를 논할 권한이 없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대신 선군(先軍)정치를 언급하며 마치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을 개발하는 것이 남한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을 해 남측 대표단을 당혹스럽게 했다.

북한은 선군이 남측에 안전을 도모해주고 있다면서 남측의 광범위한 대중이 선군의 덕을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이관세 실장이 전했다.

북한은 2001년 12월15일자 통일신보에서 “남쪽의 동포들이야말로 선군정치의 덕을 입고 있는 최대의 수혜자”라고 주장한 것을 시작으로 그동안 기관지 등을 통해 이 같은 논리를 펴왔지만 회담에서 이 주장을 꺼낸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이에 우리측 수석대표인 이종석 장관은 “누가 남쪽에서 귀측에게 우리 안전을 지켜달라 한 적이 있는가”라고 반문한 뒤 이 같은 주장은 맞지도 않고 받아들일 수도 없으니 앞으로 더 이상 거론하지 말 것을 정식으로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미사일 발사에 대해 사과하기는 커녕 선군정치를 운운하며 남한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 점에 비춰 북한의 기존 주장이 뒤집어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은 6자회담 복귀에 대해서도 즉답을 피한 것으로 알려져 회담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다만 북한이 기본발언에서 주장했듯 쌀 50만t과 경공업 원자재 제공을 요청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쌀과 원자재가 북한이 이번 회담에 응한 이유로 보인다는 점에서 북한을 압박할 유용한 카드로 사용될 수 있다는 관측에서다.

그렇지만 북측 대표단이 6자회담 등에 대해 결단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없기 때문에 당장 이번 회담에서 결실을 보기보다는 우리 측의 단호한 입장을 지도부에 전달, 6자회담 복귀에 이르는 지렛대로 작용하기를 기대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한편에선 현재 평양을 방문해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과 만난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의 설득 노력이 효과를 거둔다면 부산에서도 기대 이상의 성과가 나올 수 있다는 낙관론도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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