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데뷔 앞둔 탈북자 출신 여성그룹 ‘달래음악단’
신분노출 걱정에 한명은 탈퇴


“사실 우리는 북한에서 하라는 말만 주로 했던 습관이 들어놔서 인터뷰가 많이 부담스럽습네다….”

지난 7일 밤 서울 방배동 한 빌딩 지하의 연습실. 섬뜩한 고음으로 ‘홍콩 아가씨’를 부른 탈북자 출신 여성 그룹 ‘달래음악단’(본지 6월 29일자 A27면 보도) 멤버 5명의 표정은 인터뷰 자리에 앉자 굳어지기 시작했다.

“어디 출신이냐?”는 질문에서부터 말문이 막힌다. 대부분 가족 일부가 아직 북한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남쪽 대중 앞에 자신의 맨 얼굴을 환하게 드러내기로 결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지금도 조심스럽다. 멤버 일부가 가명으로 활동하는 것도 그래서이다.

그래도 이들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탈북 전후의 심경 등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리더 한옥정(28)씨는 “한국에 오니 제가 부르고 싶은 노래를 마음껏 부를 수 있어 좋다”고 했다.

“북에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를 숭배하는 노래를 많이 부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는 고등중학교 졸업 때까지 성악을 전공, 98년 탈북 직전까지 ‘당의 목소리를 전하는’ 선전대에서 노래를 불러 왔다.

“가성을 위주로 한 북한의 창법과 남한의 편안한 창법을 합쳐 최초로 남북이 하나로 통일된 목소리를 만들고 싶습네다.”

“요즘 밥도 굶어가며 연습한다”며 뿌듯해 하던 그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진다.

그는 “언니를 찾으러 탈북했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는데, 북의 아버지가 정치범 수용소로 가셨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 아마도 우리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북한에서 체육무용을 배웠다는 이윤경(23)씨는 “한국 가요계에서 빨리 ‘떠서’ 엄마를 찾고 싶다”고 했다.

그는 중국으로 떠난 엄마를 찾기 위해 2000년 탈북했지만 아직도 엄마를 만나지 못했다.

“휴~ 가슴이 아픈 밤이 많아요. 그래도 우선 엄마부터 찾아야 될 것 같아요.”

당초 6인조로 출범할 예정이었던 ‘달래음악단’은 식구가 한 명 줄었다. 북에 두고 온 가족들 때문에 자신을 드러내는 게 부담스러웠던 멤버 한 명이 탈퇴했기 때문.

나머지 멤버들 심경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하다.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임유경(19)씨는 그래도 가장 활달한 모습.

“한국에서 어린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듯 북한에서는 아코디언을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며 “예술을 하려면 어디나 돈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 집안도 어렸을 때는 부유했다”고 했다.

“2003년 8월 북한을 탈출해 중국, 캄보디아를 거쳐 한국에 왔다”며 탈북 과정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국경 지키는 군인들한테 돈 주면 그냥 보내주는 경우가 많아요. 장교들이랑 ‘사업’하면 가고 싶은 시간에 넘어갈 수 있고 졸병을 상대하면 새벽에 넘어가야 하죠.”

그는 “북한이 옛날처럼 사람들을 많이 죄지 않는다”며 “탈북자 가족들도 괜찮게 살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끼가 차고 넘쳐 보이는 그는 “당연히 스타가 되고 싶다.

북한에서도 연예인이 되고 싶었는데 신분을 많이 따지는 사회라서 당 간부의 자식이 아닌 나는 기회가 적었다”며 웃었다.

이 밖에도 허수향(22)씨는 유치원 시절부터 하루 8~9시간씩 연습을 계속해온 기계체조의 달인이고, 강유은(19)씨는 평양연극영화대학에서 연기를 공부하며 배우의 꿈을 키워 왔다.

남한에 와서 힘들었던 점을 묻자 뜻밖의 대답이 흘러나온다. “한국이 외래어를 너무 많이 쓴다”며 “셀프, 세일 같은 일상적인 외래어를 몰라 애먹은 적이 많다”고 했다.

맏언니 한씨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북과 남에서 살며 두 가지 문화를 다 접해 봤잖아요. 양쪽 다 장점이 있어요. 북한 사람과 남한 사람이 우리 음악을 통해 그런 서로의 문화에 쉽게 다가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일종의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겁네다.”

8월 중 나올 이들의 데뷔 앨범에는 ‘홍콩 아가씨’를 타이틀곡으로 북한 노래, 신곡 등이 고루 담길 예정이다.
/최승현기자 vaidal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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