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ABC, 로이터 등 외신 인터뷰 요청 쇄도

“연습 벌레예요. 가요계 성실파 가수도 저리가라 입니다.”

며칠전 서울 방배동의 지하 연습실.

’새가 새가 날~아든다. 새가 새가 날~아든다~’ ’별들이 소근대는 홍콩의 밤 거리. 나~는야 꿈을 꾸며 꽃 파는 아가씨~’ ’라~이 라이야 어서 오세요. 당신의 꽃이 될래요~’.

고음의 간드러지는 노래 소리와 흥겨운 아코디언 연주가 끊이지 않는다.

데뷔를 앞둔 탈북자 출신 여성그룹 달래음악단(가칭)이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쉬지 않고 연습하는 소리다.

오후 6시가 연습을 종료하는 시간이지만 “더 하겠다”고 자청한 것도 이들이다.

머리엔 야구 모자, 다리에 딱 붙는 팬츠와 덧입은 짧은 치마. 한국의 여느 20대 신세대와 차림새가 다르지 않다. 단지 ’ㅅ’과 ’어’의 도드라지는 발음과 독특한 억양에서 북이 고향이란 사실을 눈치챌 수 있다.

달래음악단은 당초 6인조로 나설 예정이었지만 현재로선 리더 한옥정(28ㆍ보컬), 허수향(22ㆍ무용), 강유은(19ㆍ아코디언과 보컬), 임유경(19ㆍ아코디언과 보컬), 이윤경(23ㆍ무용과 보컬) 등 5인조로 멤버 구성을 수정할 계획이다.

북에 두고 온 가족이 걸려 갈등하던 한 명이 탈퇴했기 때문.

멤버들은 매일 오전, 연습실에 오면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바닥 청소부터 한다.

“외식하는 시간이 아깝다”며 관리해주는 스태프 몫까지 도시락을 챙겨온다.

장난도 잡담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물먹고 화장실 가는 짬도 쪼개가며 연습해 주위 사람들의 혀를 내두르게 한다.

연습실 한켠에 비치해둔 반주용 테이프에 맞춰 노래하다 한 멤버가 만족스런 음색을 뽑아내지 못하자 한옥정은 “저기 가서 혼자서 계속 연습하라”고 지시한다.

그러자 정말 쉬지 않고 연습하는 모습.

옆 연습실에서 연습하던 다른 신인그룹이 “우리도 더 열심히 하겠다”고 자극을 받았다.

최근 장윤정의 히트곡 ’짠짜라’ ’꽃’ 등을 쓴 작곡가 임강현 씨는 멤버들의 노래와 연주 실력을 본 후 박수를 쳤다.

북한 선전단, 예술단 출신 또는 대학 등 전문기관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트레이닝이 전무한 상황에서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듀서를 자청했고 아내인 작사가 정인 씨와 함께 이들을 위한 신곡을 이미 몇 곡 완성했다.

달래음악단은 12일부터 서울 강북의 한 스튜디오에서 ’홍콩아가씨’와 임강현 씨가 쓴 신곡을 녹음한다.

8~9월께 음반 발매 전 두 곡을 먼저 녹음해 7월 말부터 방송 활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뮤직비디오는 18~20일 인기 개그맨들과 함께 촬영하기로 했다.

현재 멤버들은 연습에 연습을 거듭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탈북자란 그림자에서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반짝 이슈’를 위해 뭉친 팀이 아니란걸 실력으로 입증하겠다는 의지다.

목숨을 걸고 탈북했고 “북에서 쌓은 재능을 남한에서 펼칠 기회가 생긴 것만으로도 하루 하루가 새삼스럽다”고 한다.

이에 “다른 신인처럼 우리도 전문 선생님께 혼나면서 트레이닝을 받고 싶다”고 자청하기도 했다.

북에서 성악을 전공한 리더 한옥정을 중심으로 호흡이 척척 맞으니 “가르칠게 없다”는게 소속사(오렌지엔터프라이즈)의 설명이다.

국내 대중음악계 데뷔를 준비중인 달래음악단은 여느 가수처럼 단순한 스타나 엔터테이너가 되는게 목표가 아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관심이 고조된 상황에서 이슈몰이로 끝낼 생각은 더더욱 없다.

남북 분단 상황이 빚어낸 그룹인 만큼 향후 국내외 공연 활동을 통해 남북한 문화의 이질감을 희석시키는데 한몫하고 싶다는 마음 속 꿈도 있다.

노래만이 아닌, 무용, 악기 연주까지 새로이 갈고 닦아 2~3시간 공연을 거뜬히 해낼 정도의 준비를 갖출 생각이다.

국내 언론의 관심은 물론 해외 언론의 취재 요청도 뜨겁다.

이미 로이터통신을 비롯해 영국 BBC, 미국 ABC, 일본 니혼TV와 산케이 신문 등 해외 언론매체가 취재 요청을 해왔다.

로이터의 경우 다큐멘터리 제작 가능성도 언급했다.

이들의 무대 의상도 유명 한복 연구가이자 디자이너인 김예진 씨가 맡는다.

노무현 대통령,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할리우드 스타 니컬러스 케이지 등 명사의 한복을 디자인한 김예진 씨는 이들이 무대에서 소화할 한복 디자인 작업에 이미 착수했다.

달래음악단 멤버들은 요즘 한가지 걱정이 있다고 한다.

그룹 결성 시기엔 북에 두고 온 가족 걱정에 갈등했지만 지금은 “대중이 색안경을 끼고 보면 어떡하나”란 우려다. 국내 한 음반기획사를 통해 결성되자 가요계 일부에선 이벤트성 기획이란 시선도 있기 때문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색안경을 끼고 선입견을 갖는 것은 또 한번 이들에게 생채기를 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이들의 활동 소식에 격려와 박수를 보낸 곳은 실향민 단체와 탈북자 출신 모임들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부적응자로 살아가는 탈북자도 한국에서 떳떳이 삶을 개척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길 바라는 것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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