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돕다 체포 ‘4년째 中에 수감’ 최영훈씨 부인 호소
30분간 면회통해 본 남편 고혈압·천식·당뇨 시달려
탄원서 몇번씩 올렸지만 외교부 태도 너무 무성의


“억울하고 분통이 치밀어 죽겠습니다. 남편이 4년째 중국 감옥에 갇혀 있는데도 정부가 이렇게 손을 놓고 있어도 되는 겁니까.”

중국에서 탈북자들을 돕다 체포돼 수감 중인 최영훈(43)씨의 부인 김봉순(39)씨는 “하도 울어서 눈물샘이 말라버렸다”고 했다.

최씨는 2003년 1월 중국 산둥성 옌타이항에서 보트를 이용해 탈북자 80여 명의 탈출을 도우려다 ‘불법 월경 조직죄’로 체포돼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현재 4년째 웨이팡교소도에 수감 중인 그는 고혈압, 천식, 당뇨에 시달리며 힘겹게 옥중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차라리 보지 말 것을…. 병색이 짙은 남편 얼굴이 아른거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요.” 김씨는 지난 4월 노모(老母)와 함께 최씨를 면회했다.

비쩍 말라 있었다. 171cm의 키, 80㎏가 넘는 체구였지만 55㎏도 안돼 보였다. 밖은 따뜻한 봄인데, 남편은 두꺼운 양말을 겹쳐 신고도 “춥다”고 했다.

입으로는 “괜찮다, 잘 지낸다”고 했지만 까만 얼굴에 입술은 파랬다. 천식 때문에 말할 때마다 숨소리가 거칠게 새 나왔다.

“밥은 잘 먹는지, 교도소 생활은 어떤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교도관 4명에 중국인 통역이 지키고 있어서 말을 조심하는 것 같았어요.”

중국 당국에 호소하고 1인 시위에 나서며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외교통상부 앞으로 수차례 탄원서도 보냈다.

딱 한 번 온 답장 내용은 “주중대사관은 최영훈씨에 대해 인도적 차원에서 조기 석방을 적극 검토해줄 것을 이미 중국측에 요청했으며, 이에 대해 중국측은 관계기관과 협의하겠다고 답변해왔다”였다.

“힘없는 사람이라고 이렇게 정부가 무성의할 수 있습니까? 이 문서 한 장으로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건지, 너무 답답하고 섭섭합니다.”

최씨와 함께 체포됐던 프리랜서 사진작가 석재현(36)씨는 2004년 3월 석방돼 귀국했다. 석씨가 석방되던 날, 김씨는 바닥에 주저앉아 울었다.

“같은 한국사람이니 혹시나 남편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기도했는데….” 지금도 그는 매일 잠들기 전과 아침에 눈뜬 직후, 간절히 기도한다.

최씨는 2004년 1월 감옥에서 성경책을 오려 붙여 쓴 편지를 가족들에게 부쳐왔다. 편지 제목은 ‘공의와 공평과 정직, 인간을 사랑한 죄’. 17일 동안 매일 8시간씩 성경책에서 필요한 글자를 오려 B5용지 한 장 앞뒤로 깨알같이 붙여 만든 것이다.

“선희, 수지에게 약속하노니 아버지가 본향으로 돌아가면 너희와 함께 즐거운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를 원하노라… 아버지가 옥에 갇혀 있는 것으로 너희가 나를 부끄러운 아버지로 생각하지 말기를 바라고 있느니라….”

그동안 김씨는 재봉기술을 배웠다. 봉제공장에 다니면서 서울 중화동에 월세 20만원짜리 반지하방을 마련해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중학생이던 큰딸 수지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됐다. 막내 선희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됐다. 노모는 충격으로 쓰러져 큰 수술만 세 번 받았다.

김씨는 최근 북한인권 소식지 ‘좋은이웃’에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올렸다.

“탈북자들은 언제 공안에 붙들려 북한으로 송환될지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생명을 내건 모험을 통해서라도 자유가 있는 한국땅을 밟는 것이 그들의 진정한 소원이었습니다.

제 남편은 힘없는 그들에게 다가가 한국행을 도울 수밖에 없었습니다…(중략)… 인권변호사를 자처하며 인권문제를 귀하게 여기겠다는 대통령께서 속히 어린 두 딸과 노부모가 기다리는 가족, 그리고 고국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힘써 주십시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허윤희기자 ostinat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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