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도쿄 특파원 사무실에 관할 경찰서에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공안 담당이라고 신분을 밝힌 그는 “요즘 불편한 점은 없느냐”며 이것저것 묻다가 “이상한 전화나 괴롭힘이 있으면 도움을 요청하라”며 전화번호를 가르쳐준 뒤 전화를 끊었다.

독도문제 등으로 양국 간에 감정이 악화될 때마다 인사치레 비슷하게 “한국으로 돌아가라”는 등의 ‘협박성’ 전화를 받긴 했지만, 경찰한테까지 안부전화를 받기는 특파원 부임 이래 처음이다.

기자가 예민해서일까. 요즘 들어 일본인들이 한국과 한국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싸늘하게 변하고 있는 것을 실감한다.

자주 만나는 재일동포들이 이구동성이다. 민단 집행부가 난데없이 조총련에 손을 내밀어 ‘화해성명’이라는 것을 발표한 이후로는 일본 손님들이 뚝 끊겨 장사가 안 된다고 난리다.

일본인들은 “조총련에 이어 민단도 일본 사회의 적이 되려 하느냐”며 눈을 흘기고 있다. 금강산에서 있었던 최계월·김영남 모자 상봉도 일본인들에게는 오히려 한국에 대한 이질감과 위화감을 느끼게 했다.

북한측과 끈질긴 줄다리기를 통해 생존 납북자들을 귀국시킨 일본이 볼 때는 한국측의 행동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주류였다. 실제로 한·일 양국 납치피해 가족단체 간의 연대는 물 건너갔다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한·일 두 나라의 외교자세를 보면, 정치 차원의 한·일 교류는 당분간 미뤄 두는 것이 좋은 것 아닌가 싶을 정도다. 지난 5일 새벽 북한이 미사일을 쏘기 시작한 바로 그 시각, 한국의 해양조사선은 독도해역 해양조사를 강행했다.

주요 신문들은 두 사건을 1면에 나란히 실었다. “남북한이 짜고 공동작전을 하느냐” “남북한으로부터 한 방씩 먹었다”는 식의 반응이 쏟아졌다. 일본 국민들은 대북 제재에 90% 이상이 찬성할 정도로 격앙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작 최대 당사자인 한국 정부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남북 장관급회담을 열기로 하자, 민방 TV의 진행자는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는다”며 분개했다.

TV에 출연한 한반도 문제 전문가는 “일·미·한 3국이 의연하게 대처해야”라고 말하다가, “아 참, 대북 융화정책을 고집하는 한국은 빼고…”라고 정정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6월 22일 “일본 도발에 맞설 방어적 대응력을 갖춰야 한다”며, 마치 일본의 위협으로 한·일 무력충돌이 임박한 것처럼 비장한 발언을 했다.

이보다 조금 앞서 납치문제 협의차 서울을 방문했던 일본 국회의원들은 한국 정부·여당으로부터 푸대접을 받았다. 반기문 외교부 장관과는 만났지만, 미리 만나기로 했던 이종석 통일부 장관의 면담은 일방적으로 취소됐다.

한국 여당의원 가운데 유일하게 만날 수 있었던 문희상 한일의원연맹 회장은 “미국과 일본은 북한에 ‘엄한 아버지’처럼 하고 있지만, 한국은 ‘자애로운 어머니’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해, 서로 입장 차이만 확인했다.

일본 정부 내에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포기 무드가 감돈다. 한 각료는 비공식 간담회에서 “한국의 지금 정권과는 무엇을 말해도 안 된다”며 노골적으로 불신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월드컵 공동개최 이후 한류 붐으로 한·일 간에 민간교류는 활성화되고 있지만, 사정이 이쯤 되면 민간 교류에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다.

한·일 관계는 과거 한 시기 역사문제 등에서 갈등을 겪으면서도, 두터운 정치 채널로 조정하던 시기가 있었다.

물론 시대가 바뀐 만큼 방식은 달라져야겠지만, 새로운 한·일 정치채널 구축은 ‘고이즈미 이후’ ‘노무현 이후’의 숙제로 넘겨야 할 것 같다. 고이즈미 총리는 오는 9월, 노무현 대통령은 내후년 2월 퇴진한다./정권현 도쿄특파원 khj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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