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 발사 시나리오’ vs ‘우연의 일치’

북한이 대포동2호를 비롯한 미사일 7발을 발사하기 이틀 전에 군사관련 대화를 갖자고 제의하고 이를 남측이 거절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향후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북한이 지난 3일 전화통지문을 통해 7일 갖자고 제의한 장성급 군사회담 연락장교 접촉은 회담의 격은 다소 낮지만 북한의 미사일 발사 뒤 처음으로 남북이 얼굴을 맞댈 기회였다는 점에서 북측의 제안 및 남측의 거절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우리 정부가 북측의 대화 제의를 거절한 전례가 극히 드문 만큼 참여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에 변화가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과 함께 오는 11∼14일 부산에서 열릴 예정인 남북장관급회담의 정상적 개최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 북한 왜 대화 제의했나 = 북한이 장성급 군사회담 연락장교 접촉을 제의한 지난 3일은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기 이틀 전이다.

북측이 접촉을 갖자고 제안한 7일은 미사일을 발사한 이틀 뒤다.

공교롭게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접촉 제의 날짜와 접촉 예정 날짜 사이에 낀 것으로, 북측의 이번 접촉 제의가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이유다.

자연스럽게 북한이 미사일 발사 이후의 시나리오까지 치밀하게 준비했음을 보여준다는 분석이 흘러나오고 있다.

즉, 미사일 발사가 일상적 군사훈련이었음을 남측에 설명하기 위해 미리 날짜를 잡아 놓았다는 추측이다.

북한을 압박하는 국제 연대가 가시화되는 상황에서 남한의 이해를 구해 고립을 벗어나려는 시도라는 설명이다.

이런 가설은 북측이 우리 정부의 대북 추가지원 유보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어떻게든 대화의 틀은 유지하고 싶어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과도 닿아 있다.

남북은 당초 이번 19차 장관급회담에서 쌀 50만t 차관 지원과 비료 10만t 추가 지원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었지만 미사일 발사로 우리 정부가 이를 보류하기로 한 것이 북한 입장에서는 상당히 절박하게 다가왔다는 것이다.

2002년 7.1조치 이후 물가 불안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식량난 가중과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 경제 전반이 흔들릴 수 있는 공산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북한의 이번 연락장교 접촉 제의가 특별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관측도 만만치 않다.

남북은 지난 달에도 두 차례나 연락장교 접촉을 가진 것으로 알려지는 등 비교적 상시적으로 연락장교 접촉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제안도 우연하게 미사일 발사 시기와 겹쳤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통일부쪽에서는 지난 5월 무산된 열차시험 운행과 연결시키는 시각도 있다.

당시 북한은 군사적 보장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점을 들어 열차 시험운행을 무산시켰는데 남북은 지난 달 남북 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제12차 회의에서 열차 시험운행이 이뤄지면 경공업 원자재를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따라서 원자재 지원이 급한 북한의 대남사업 부서에서 군부에 남측과 대화에 나설 것을 종용, 이번 군사접촉 제안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 南, 왜 대화 연기했나 = 우리 정부가 북측의 대화 제의에 연기를 통보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특히 미사일 발사 직후 열린 대통령 주재 안보관계장관회의에서도 대화의 틀은 유지한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진 터라 궁금증은 더해진다.

일단 미사일 발사 직전에 내놓은 북한의 대화 제의에 깔린 의도가 분명치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대화에 응했다가는 북한의 페이스에 휘말릴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아무래도 연락장교 접촉은 격이 떨어지는 만큼 접촉 거절을 통해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강한 항의의 뜻을 전달하려 했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국방부는 회담 연기를 통보하기 위해 북측에 보낸 전화통지문에 미사일 발사에 대한 강한 유감의 뜻을 담은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부 당국자는 이날 “장성급 군사회담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완화를 논의하는 자리인데 이를 위한 접촉을 제의해놓고 미사일 발사를 감행한데 대해 매우 당혹스럽고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정부는 미사일 발사 직후 부처 간 협의를 거쳐 접촉을 연기하기로 결정했으며 이 과정에서 부처간 특별한 이견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군사접촉인 만큼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강경 대응해야 한다는 기류가 상대적으로 짙은 국방부의 목소리가 많이 반영됐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연기 결정과 관련, 우리 정부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항의하기 위해서는 연락장교 접촉에 응한 뒤 장성급회담을 열어 미사일 발사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북한 군부의 핵심인사를 만나 따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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