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1개 대대 핵개발부대 투입”…“무수단리는 일본 도쿄 겨냥”
“인민무력부 직속 관리·통제”…“주민 전원 인민무력부 신분증 지급받아”


대포동2호 미사일 기지가 위치한 함경북도 무수단리 기지 건설에 핵개발을 담당하는 북한 노동당 131지도국이 깊이 관여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탈북자단체인 ’탈북자동지회’ 소속으로 1980년대 북한 원자력공업부에서 우라늄폐기물 작업반장으로 활동한 김대호(47)씨는 “무수단리 기지 건설에는 핵개발을 담당하는 노동당 ’131지도국’이 깊이 관여돼 있다”고 주장했다.

131지도국은 북한에서 핵시설 건설을 담당하는 기구로 중앙당에서는 유일하게 직속 부대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북한이 1990년 무수단리에 있던 군사건설국을 철수시키고 1개 대대(약 300명)의 핵개발 부대를 투입했다”며 “무수단리는 해안에 접하면서도 노출이 잘 되지 않는 지형으로, 6.25전쟁 당시 미국의 함포사격에 콤플렉스를 갖고 있던 북한으로서는 안성맞춤의 군사기지”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핵개발 부대에서 같이 일하다 무수단리로 들어간 동료들로부터 정무원 총리급의 ’특급경호’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그들은 무수단리 기지가 서울이 아니라 일본 도쿄를 겨냥한 대일(對日) 전략기지라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탈북자단체인 숭의동지회 최청하(59) 사무국장은 7일 “북한 당국은 1980년대 초 무수단리에 ’불순분자’를 이주시킨 뒤 주민 전원에게 인민무력부 신분증을 지급했다”며 “이곳은 표면적으로 과학원 함흥분원 산하에 있지만 사실상 인민무력부가 모든 것을 통제, 관리하는 특별구역”이라고 소개했다.

최 국장은 1980년대 초반 북한이 무수단리를 미사일 기지로 조성할 당시 군부대에 소속돼 공병부대, 일반 주민 등과 함께 반 년 가량 케이블 및 도로 설치에 참여했다.

이 작업은 화대군의 북서쪽에 위치한 길주군에서 무수단리까지 이어지는 대공사로 동원된 군인과 주민들에겐 ’특수공사’라고 통보하고 시작됐다.

최 국장은 “지휘부에서는 공사 목적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지만 입소문을 통해 미사일 기지로 향하는 케이블과 도로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화대군에는 철길이 들어가지 않아 길주군에서 무수단리까지 자동차나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화대읍에서 북동쪽으로 20㎞ 정도 떨어져 동해에 접해있는 무수단리는 원래 농사와 고기잡이를 병행하는 ’농업수산협동군’으로 미사일 기지 외에는 별다른 시설이 없다.

최 국장에 따르면 주민들은 처음 인민무력부 신분증을 받았을 때 ’특별공급’에 편입돼 생계에 유리할 것으로 반겼지만 배급에 큰 변화는 없었으며, 출입증을 제시해야 이 지역을 통과할 수 있는 등 통제가 더욱 강화됐을 뿐이다.

또 이곳 주민들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농수산 생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기지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출입이 차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 국장은 “1990년대에는 기지에 방어부대가 투입됐다”면서 “기지를 둘러싼 철조망과 함께 전문 보안요원이 배치돼 있어 영변(핵시설)보다 보안이 철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은 1998년 8월31일 무수단리에서 인공위성을 발사했다면서 이를 ’광명성 1호’라고 명명했고, 미국은 무수단리의 옛 지명인 대포동에서 발사했다 하여 이를 ’대포동 1호’라고 칭했다.

한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듬해인 1999년 3월7일 지방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당시 과학원 함흥분원에서 직접 투표하는 등 대외적으로 함흥분원에 속한 것으로 알려진 무수단리 미사일 기지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무수단(舞水端)은 이곳이 예전부터 무쇠를 생산하던 곳으로 알려져 ’무쇠 끝(端)’을 한자어로 표현한 것으로 한자어 의미는 ’바닷물이 춤추는 끝자락’이다.

이곳 기반암은 화산분출암인 현무암으로 파도의 영향으로 해안이 높고 가파른 절벽을 이루고 있으며 해류의 소용돌이가 심하기로 유명하다.

북한은 이 무수단이 한반도에서 가장 긴 바다절벽이라며 천연기념물 제312호로 지정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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