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미사일 발사 이틀 전인 지난 3일 우리측에 군사 분야 접촉을 제의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되면서 대화를 제의해 놓고 미사일을 쏜 북한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북측은 3일 전화통지문을 통해 7일 오전 10시 판문점에서 남북장성급군사회담 연락장교 접촉을 제의한 뒤 만 이틀이 지나기도 전인 5일 오전 3시32분부터 스커드 및 노동급 미사일 6기와 대포동2호 미사일 1기를 쏘아올린 것이다.

북측이 전통문을 보낸 3일에는 이미 북측이 동해북부 해상에 항해금지령을 내린 사실을 우리측이 포착하는 등 미사일 발사 움직임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다.

이 때문에 대화를 제의해 놓은 상황에서 미사일을 쏘는 행태를 놓고 다시 한 번 우리측의 뒤통수를 때린 셈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와 똑같은 사례를 찾기는 힘들지만 북측의 ‘이중 플레이’로 볼 수 있는 유사한 케이스는 과거 1999년 6월 15일 서해교전 때를 들 수 있다.

이 날 오전 9시 15분 북한 어뢰정의 기관포 공격이 시작됐고 북한 경비정의 잇단 연평도 인근해역 침범사건을 논의하기 위해 사전 예정됐던 주한 유엔사령부와 북한군간 장성급회담이 오전 10시부터 판문점에서 열린 것이다.

당시 북측 대표는 회의 개시 9분 만인 오전 10시 9분에 불쑥 “오전 9시 15분에 남한 해군이 북한 경비정에 사격을 가해 우리 병사가 죽어가고 있다”며 이에 대한 사과와 해명을 요구했다.

이 때문에 시간대별로 보면 북측이 미리 선제사격 시간을 알고 회담장에서 나온 것으로 해석되면서 치밀한 계획에 따른 북측의 도발이 아니냐는 분석을 낳기도 했다.

특히 최근에는 우리측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유사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에서 6.15공동선언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열차시험운행을 놓고도 유사 사례가 발생한 게 불과 40여 일 전이다.

남북은 5월 13일 제12차 철도도로연결 실무접촉에서 열차시험운행의 구체적인 시행안에 합의한 데 이어 같은 달 22일에도 과장급 실무접촉을 통해 세부사항을 논의했는데도 불구하고 북측은 시험운행 하루 전인 24일 일방적으로 연기한 것이다.

당시 북측은 시험운행을 앞두고 고위 당국자가 직접 철석 같이 시험운행을 약속했고 실무진도 수차례 이런 사실을 확인한 상황이어서 정부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안경호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이 광주에서 열린 6.15민족통일대축전에 북측 민간대표단장으로 참가하기 나흘 전에 내놓은 ‘폭탄발언’도 똑같은 형태는 아니지만 화해협력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는 6월 10일 ‘반일 6.10만세 시위투쟁 80돌기념 평양시보고회’ 기념보고에서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개성공단 건설과 금강산관광 등이 중단되고 “남녘땅은 물론 온 나라가 미국이 불지른 전쟁의 화염 속에 휩싸이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북측 대표단은 6.15행사 기간에 우리측의 강력한 항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달 17일 광주공항을 떠나면서 다시 안 단장의 발언을 옹호하는 성명을 내면서 다시 한 번 비난의 대상이 됐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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