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오찬 초청받은 서해교전 유가족 전원불참
“가서 이런저런 얘기 해봐야… 총리선물도 오면 곧 돌려보낼 것”


최근 몇 년 사이 순직한 군인 유가족들을 대상으로 6일 한명숙(韓明淑) 총리가 오찬을 주최했다. 한 총리가 이날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점심을 함께하자고 초청한 유가족은 모두 25명. 하지만 총리실에서 초대하려던 4명의 서해(西海)교전 전사자 가족들은 단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서해교전 희생자 부모와 아내들 중 누구도 발걸음을 않은 것이다. 서해교전은 한일 월드컵 폐막 하루 전인 2002년 6월 29일 남북한 해군이 서해에서 대치하다 북한의 공격으로 우리 해군 6명이 숨지고 18명이 부상한 사건이다.

행사 초대를 받았던 전사자 유가족들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그동안 갖고 있던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다. 고(故) 조천형 중사 아버지 조상근(63·대전시 동구)씨는 “솔직히 지난 4년간 추모 행사에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단 한 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 걸 보고선, 만나서 이런저런 말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나 싶었다”며 “더군다나 추모 행사 다 끝난 다음에 부르니 더욱 마음이 허탈했다”고 말했다.

고(故) 윤영하 소령 아버지 윤두호(64·경기도 시흥시)씨 역시 “총리실로부터 두 번 전화를 받았지만 마음이 불편해 거절했다”며 편치 않은 심경을 내비쳤다.

유가족들은 지난 4년간 남북관계 경색을 우려한 정부로 인해 적지 않은 마음 고생을 겪어왔다. 전사자들이 탑승했던 참수리357호를 전쟁기념관으로 옮겨 일반인들에게 당시 사태의 심각성을 널리 알리자는 유가족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고, 지난 4년간의 추모행사는 대통령은커녕 국무총리조차 참석하지 않은 채 진행돼 왔다.

고(故) 한상국 중사의 아내 김종선씨는 그런 현실을 못 견뎌 지난해 4월 미국으로 떠나기도 했다. 올해에도 한 총리는 다른 비공식 일정을 이유로 추모행사에 가지 않았다. 조상근씨는 “총리가 지난달 29일 열린 4주기(周忌) 추모식 때라도 와서 위로의 말이라도 한마디 건넸으면 이렇게 섭섭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순직장병 유족과 오찬 한명숙(韓明淑) 총리가 6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산불진화 헬기작업, 비행훈련 등 각종 임무를 수행하다 순직한 장병의 유족들과 오찬을 함께했다. 서해교전 희생자 유가족은 한 총리의 초청을 받고도 한 사람도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 총리는 지난달 29일 평택에서 열린 서해교전 4주기 추모식에 참석하지 않았으며, 당시 유족들은 “정부가 서해교전 전사자들을 홀대한다”고 말한 바 있다. /연합


유가족들은 이번 행사 참석 요청을 총리실로부터 개별적으로 받았으며 이후 유가족 서로 간에 참석 여부에 관한 논의는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고(故) 황도연 중사 아버지 황은태(59·경기도 남양주시)씨는 “나도 오늘에야 다들 참석을 안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며 “아마 다 나와 비슷한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해교전 사건을 계기로 정부가 우리 국민들에게 남북관계 현실을 제대로 알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황씨는 “오늘 식사 자리에 참석 안 한 사람들한테는 총리실에서 선물을 보내준다고 하던데, 그것도 도착하면 바로 돌려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총리실측은 “처음부터 서해교전 유가족에만 행사의 초점이 맞춰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행사의 의미가 희석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탁상훈기자 if@chosun.com
김봉기기자 knigh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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