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한 미국
부시, 후진타오와 통화 “중국이 역할해달라”
중·러 반대로 안보리 제재는 쉽지 않을듯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미국은 유엔 안보리와 중국을 통해 대북(對北) 압력 수위를 높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제여론을 등에 업고 북한을 6자회담 테이블로 불러들이는 압박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5일 “북한이 계산을 잘못 한 것 같다. 전 세계가 북한의 무모함을 알게 됐다”고 말한 뒤 “북한이 6자회담에 돌아오면 모든 게 해결 가능하다”고 말했다. 미사일 발사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6자회담 복귀가 미국의 최우선 목표임을 시사한 말이다.

미국은 이를 위해 ‘중국을 통한 대북 압박’ 카드를 최대한 활용할 태세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6일 오전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 전화통화를 갖고, 북한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해줄 것을 주문했다. 부시 대통령은 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도 전화통화를 갖는 등 ‘우군 확대’에 주력했다.

미국이 이번 사건에 대해 일단 외교적으로 부드럽게 접근하는 것은 대포동 2호 발사가 실패로 끝났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CNN 방송은 “북한 미사일이 미국에 위협이 되지 않는데다 그동안 대북 제재를 꺼렸던 중국과 한국이 북한을 비판하고 나서는 등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데 대해 부시 대통령이 만족하기 때문에 차분하게 대응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한편 유엔 안보리를 통한 미국의 대북 제재는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어려울 전망이다. 유엔 안보리는 5일 미·일 주도로 대북 제재 내용을 담은 결의안 채택을 표결에 부쳤으나, 중·러의 반대로 부결됐다.

안보리는 6일 다시 회의를 열고 대북 제재 방안을 논의하며, 최종 결정까지는 2주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유엔 관계자는 “의장 성명으로 낙착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분노한 일본
“美·日 미사일 방어체제 구축 서둘러야” 대북송금 차단·수산물 반입 중단 검토



◇ 오시마 겐조 일본 유엔대사가 5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장에 들어서
고 있다. /AP


북한의 미사일 연쇄 발사에 대응해 즉각 만경봉호 입항금지 등 9개항의 대북제재 조치를 발동한 일본 정부는, 북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실질적으로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 추가적인 대북제재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또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일본의 방위정책을 한층 공세적으로 바꾸는 구실을 제공, 미·일의 미사일방어(MD) 체제 구축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일본 정부가 검토 중인 추가 제재조치는 금융제재. ‘개정외환법’에서 일본의 안전을 위해 해외 현금반출을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꿀 수 있는 규정을 활용해 조총련 등에 의한 대북송금 차단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북한으로부터 수산물 반입 중단 등 무역금지 조치도 검토되고 있다. 또 지방자치단체가 조총련 관련시설에 대해 부과하는 고정자산세 등을 철저히 징수해 조총련에 대한 돈줄을 죄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또 일본 정부 내에서는 방위청을 중심으로 ‘요격능력 없이 감시만 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MD구축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이와 함께 한국측의 독도해역 해양조사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같은 날 실시되면서,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도 싸늘해졌다. “일본이 같은 날 남·북한으로부터 한 방씩 먹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일본 정부는 ‘대항 해양조사’를 밀어붙일 것으로 보인다.

한편 고이즈미 총리는 측근을 통해 이달 북한을 방문할 밤방 유도요노 인도네시아 대통령에게 김정일 위원장 앞으로 보내는 구두 메시지를 전했다. 이 메시지에는 미사일 발사가 북·일 평양선언에 위배되며 북한의 고립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경고가 담겨 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난처한 중국
“미사일 추가 발사 안돼” 원론입장 되풀이 “6자회담 활용해 北·美간 회담 만들어야”



◇ 왕광야 중국 대사가 5일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전보장이사회 긴급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회담장에 들어서고 있다. /AP


중국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가장 난처한 입장에 빠졌다. 6자 회담 재개를 위해 막바지 노력을 기울였고, 특히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까지 나서 미사일 발사 자제를 촉구한 상황에서 북한이 ‘뒤통수’를 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미·일이 주도하는 대북 제재에 적극 동참할 형편도 아니다. 중국 입장에서 북한은 미·일을 견제하는 중요 수단이기 때문이다.

5일 발표된 중국 외교부 성명은 이런 고민을 담고 있다. 외교부 대변인 성명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14시간 만에 나왔다. 그만큼 대응책을 고심했다는 얘기다. 6일에도 외교부는 북한에 대해 “추가로 미사일을 발사해서는 안 된다”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 했다.

주중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중국의 성명 중 북한에 대한 유감을 표시한 대목이 없다”면서 “중국이 대북 제재보다는 6자 회담 등 대화를 통한 해결에 더 무게를 두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내주 초 북한을 방문할 예정인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부부장도 6일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일본 민주당 대표를 만나 “6자 회담을 활용하면서 북한과 미국 2개국간 회담을 만드는 것이 지혜”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향후 중국의 대북 압박이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중국 인민대 스인훙(時殷弘) 교수는 “중국은 북한의 행동을 크게 못마땅하게 여길 것”이라며 “일정선 이하에서 북한에 압박을 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은 2003년 북한을 미·중·북 3자 회담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수일간 송유관 수리 명분으로 대북 석유공급을 중단한 적이 있다.
/유엔본부·뉴욕=김기훈특파원 khkim@chosun.com
워싱턴=최우석특파원 wschoi@chosun.com
도쿄=정권현특파원 khjung@chosun.com
베이징=조중식특파원 jsch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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