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안보 뒷전’ 원인은
盧대통령 작년7월이후 일선부대 안찾아
연평해전 승리한 장군은 한직 밀려나


정부 내 안보불감증의 근본 원인은 김대중 정부에서 시작돼 현 정부로 이어진 햇볕정책과 평화번영정책이다.

이 정책은 순기능도 하고 있지만, 안보불감증이란 부작용도 낳았다. 여기에다 고위당국자들의 언행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햇볕’ 8년의 결과

김대중 정부가 출범했던 1998년에 북한은 대포동 1호 미사일을 발사해서 한반도 위기 상황을 조장했다. 그런 가운데 99년 1월 햇볕정책이 공식적으로 시작됐다.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미사일 발사 실험 중단을 국제사회에 약속했고 정부는 이를 ‘대북 정책의 성공’으로 홍보했다.

대통령이 햇볕정책을 최고 역점 정책으로 추진하자 정부 내에 신중론자들은 급속히 자취를 감추고 햇볕론자들이 득세했다. 자연스레 정부 내 안보불감증이 퍼져 나갔다.

북한은 햇볕정책 8년 동안 시간과 돈을 벌면서 핵 능력과 미사일 능력을 대폭 확장시켜 나갔다. 북한은 김대중 대통령 임기 말인 2002년 오히려 우라늄 핵개발 계획을 공개했다. 이럴 때마다 정부는 파장을 최소화하는 데만 급급했다.

북한은 노무현 정부 들어 더 노골적이 됐다. 2003년 핵 문제 협의에선 우리를 빼고 미국·중국과 3자회담을 했다. 우리 정부는 “그래도 해결만 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자세였다.

영변 원자로에서 추출한 플루토늄은 97년 무렵 “1~2개 제조 분량인 수㎏ 정도”로 추정되던 것이 현재는 “최대 13개를 만들 수 있는 53㎏”으로 늘어났다.

북한은 알래스카를 사정권에 넣는다는 대포동 2호 미사일을 개발했고, 개량형은 미국 전역을 사정권에 두는 것으로 추정될 정도다. 미사일이나 핵만이 아니다.

북한은 잠수함이나 대포 등 남한을 효과적으로 타격할 수 있는 재래식 무기도 햇볕정책 기간 증강했다. 반면, 햇볕정책 기간 국가정보원의 간첩 검거는 크게 줄어들었다.

1999년 연평해전 승리의 주역 박정성 예비역 소장(당시 2함대 사령관)이 한직을 전전하다가 물러난 것은 안보 불감증의 한 사례다.

박 소장은 해전 승리 후 오히려 한직을 떠돌다 2004년 결국 옷을 벗었다. 중장 승진도 하지 못했다. 공직자湧?안보 문제에서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상황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2002년부터 “남북대화 하나만 성공시키면 다 깽판 쳐도 괜찮다” “반미면 어떠냐”는 말을 쏟아냈다.

노 대통령 취임 후 정부 내엔 공공연히 ‘자주파’가 생겼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내 안보불감증이 퍼지지 않을 수 없었다.

노 대통령은 북한 핵에 대해서도 “(북한 핵이 방어용이라는) 북측의 설명에도 일리가 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이런 대통령의 언급은 공직자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북한 인공기를 훼손한 사람들을 정부가 조사하고,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노골적으로 ‘친미주의자’를 공격하는 등의 행태 역시 마찬가지다.

노 대통령은 작년 7월 해병대 방문 이후 지난 1년 동안 일선 군부대를 방문한 적이 없다. 계룡대나 사관학교 같은 곳이 아닌 일선 부대 방문은 취임 후 4번에 불과하다.

노 대통령은 물론 국무총리까지 서해교전 전사자 추념식에 참석하지 않고 있다. 이런 지도급 공직자들의 처신을 보면서 아래의 공무원들은 안보 문제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감’을 잡고 있다.
/권대열기자 dykw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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