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浩烈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북한이 5일 새벽부터 저녁까지 연속해서 미사일을 발사했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 징후가 포착된 이후 국제사회는 깊은 우려 속에 북한의 시험발사 중지를 촉구해왔고 미국과 일본은 제재를 포함한 강력한 대응 방침을 표명해왔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중시하는 남한 정부는 물론 북한의 최대 우방국인 중국도 각종 채널을 통해 북한 지도부에 미사일 발사를 중단하도록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던 상황이었던 만큼 북한으로서는 미사일 발사가 가져올 심각한 파장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같은 정황은 미사일 시험 발사가 국제법적으로 보장된 주권행위라는 당위성을 기회 있을 때마다 제기하는 한편 조선신보 등을 통한 신축적 입장 표명 등 미사일 발사와 관련한 불투명성을 증폭시킨 점이나 실제 발사를 감행하기까지 상당 기간이 소요되었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만큼 이번 미사일 발사는 북한 내부에서도 논란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사일 발사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최고 수준의 각오하에 김정일의 최종 결단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
김정일이 미사일 발사란 극단적 도발 행위를 감행한 가장 큰 이유는 북한의 현안문제를 일괄타결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양자회담이 유일한 해법이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벼랑 끝 전술이 가장 효과적이란 생각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핵무기 보유 선언을 했을 때나 핵물질을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있음에도 불구, 꿈쩍도 않고 김정일 정권을 무시하고 대북 압박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부시 행정부에 대해서 ‘힘에는 힘으로’대항하는 것만이 최대의 이득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김정일의 독단이 작용한 것이다. 미사일 발사 시점이 미국의 독립기념일이란 점도 미국인들의 우려와 관심을 최대로 끌어올리겠다는 계산임을 보여주고 있다.

최악의 사태를 각오한 김정일의 또 다른 의도는 이미 국제사회에 드러난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유야무야 중단할 경우 미국과의 협상에서 끝없이 밀려날 수밖에 없으며, 이럴 경우 김정일의 리더십은 군부 등 북한 내 강경보수파들의 입장을 통제키 어려울 수도 있다는 내부 요인도 작용하였을 것이다.

연초에 김정일은 중국의 개방특구를 방문함으로써 뭔가 북핵문제나 미국의 대북제재 해소의 돌파구를 마련하려고 하였으나 여의치 않았다. 또다시 미국과의 협상 구도를 마련치 못한 상황에서 미사일 발사를 강행하지 않고는 자신의 신화적 통치력에 훼손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을 것이다.

북한은 위험분산 차원에서 노동미사일과 함께 장거리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였으나 정작 장거리 미사일은 실패하였다. 실패에도 불구하고 미사일을 실제 시험 발사하였기에 미국 등 국제사회의 우려와 제재는 불가피할 것이다. 실패한 미사일 시험발사에 대해 김정일은 분노하였을 것이나 그 책임을 군부에 묻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보다는 군부가 사생결단의 각오로 미사일 개발에 전력을 다하여 머지 않은 시기에 다시금 미사일 시험 발사나 그 이상의 무력 시위를 재시도할 것에도 대비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가 실패한 것 못지않게 우리 정부의 대북판단이나 정책 역시 실패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지난 6년 동안 북한에 대해 끌려다니다시피 하며 비위를 맞추고 눈치를 보면서도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미명하에 낙관적으로 접근했던 대북정책을 이제 북한의 본성을 다시금 확인한 상태에서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지속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장관급회담에서고 대북지원사업에서고 말뿐인 유감 표명은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절감한 이 시점에서 북한을 다루기 위해선 북한이 아파하고 싫어도 따를 수밖에 없는 ‘힘의 원칙’을 제때에 제대로 적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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